18세기 영국 의사 에드워드 제너가 백신 접종인 ‘종두법’을 개발하기 전까지 천연두는 치사율 30%가 넘는 감염병이었다. 제너는 소가 걸리는 ‘우두’라는 병을 앓았던 사람은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우두 환자에게서 얻은 고름을 건강한 사람에게 접종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 덕분에 1980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천연두 종식을 선언할 수 있었다.
백신이 또 한번 감염병의 위협에서 인류를 구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미국 바이오기업 모더나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임상 1상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다고 18일(현지시간) 발표했다. 300억달러(약 37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코로나19 백신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글로벌 제약바이오기업 간 경쟁도 본격화할 전망이다.
피험자 45명 모두 항체 형성
모더나는 “코로나19 백신 ‘mRNA-1273’을 성인 남녀 45명에게 투여했더니 모든 사람에게서 코로나19 항체가 형성됐다”고 밝혔다. 모더나는 미국 국립보건원(NIH)과 함께 지난 2월부터 45명의 피험자를 3개 그룹으로 나눠 각각 25㎍(마이크로그램: 100만분의 1g), 100㎍, 250㎍을 약 한 달 간격으로 두 번(250㎍은 한 번) 투여했다.
그 결과 25㎍과 100㎍이 투여된 모든 피험자에게서 코로나19에 감염된 뒤 자연적으로 회복된 사람과 비슷한 수준의 항체가 형성됐다. 25㎍과 100㎍을 투여받은 피험자 가운데 8명에게서는 바이러스를 무력화하는 중화항체도 만들어졌다. 탈 잭스 모더나 최고의료책임자(CMO)는 “임상 1상 결과는 초기 단계이긴 하지만 mRNA-1273이 25㎍ 투여로도 코로나19 감염에 의해 형성되는 만큼의 면역반응을 일으킨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250㎍이 투여된 피험자 3명은 두 번째 투여가 이뤄진 뒤 발진 등 부작용을 보였지만 일시적이었다.
모더나는 이달 초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600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 2상을 승인받았다. 임상 3상은 오는 7월 시작한다. 모더나는 25㎍과 100㎍을 피험자에게 두 번 투여하는 방식으로 임상을 진행할 계획이다. 올해 말 또는 내년 초 상용화하는 게 목표다.
DNA, RNA 등 투여해 면역반응 유발
WHO에 따르면 지난 5일 기준 전 세계에서 개발 중인 코로나19 백신 후보물질은 108개다. 백신은 병원성(병을 일으키는 성질)을 약화하거나 제거한 바이러스 관련 물질을 체내에 투여해 인체에 적정한 면역반응을 유발하고 병에 저항하는 능력을 갖추게 하는 기술이다. 바이러스를 제거하는 역할을 하는 항체가 형성되도록 하는 데 바이러스의 어떤 물질을 이용하느냐에 따라 백신 기술이 구별된다.
이효준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인체는 바이러스, 세균 등 해로운 물질이 외부에서 들어오면 이를 인식한 뒤 제거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며 “면역체계가 항체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자극하는 물질로 바이러스, DNA, RNA, 단백질 등이 있다”고 설명했다.
모더나의 백신은 RNA 백신이다. 바이러스의 유전정보를 담은 RNA를 주사하면 체내에 바이러스 단백질이 형성되는데 면역체계가 이를 인식하고 항체를 만들어낸다. 미국 이노비오와 한국 제넥신이 개발하고 있는 코로나19 DNA 백신도 차세대 기술 중 하나다. DNA 백신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인체에 침투하는 데 중요한 기능을 하는 ‘스파이크 단백질’의 DNA를 투여하는 것이다. 성영철 제넥신 회장은 “DNA가 체내에 들어가면 다량의 바이러스 단백질이 생성된다”며 “RNA 백신보다 만들어지는 단백질량이 더 많아 항체 형성 효과가 뛰어나다”고 했다.
RNA 백신과 DNA 백신은 기존 백신보다 개발이 쉽고 대량 생산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사람용 백신으로 제품이 나온 적은 없다. 효능과 안전성에 대한 검증이 필요한 배경이다. 이동기 올릭스 대표는 “DNA백신은 안전성 문제, RNA백신은 약물 전달 문제를 안고 있다”며 “백신 개발 기업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개발기간 단축 위한 가이드라인 필요
제약바이오업계는 아직 백신 개발 성공을 신중하게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제롬 킴 국제백신연구소(IVI) 사무총장은 “백신을 개발하는 데 5억~15억달러가 드는데 어렵게 개발해도 실패할 확률이 93%에 이른다”며 “보통 5~10년이 걸리지만 코로나19처럼 시급한 상황에서는 6~18개월 내로 목표를 세워야 한다”고 했다. 그는 “각국 규제당국이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기업이 해야 할 일에 대한 이해를 도와 임상시험 기간을 단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유 기자 free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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