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호의 캐피털마켓 워치] 호화 유람선의 눈물겨운 담보차입

입력 2020-05-20 09:03   수정 2020-05-20 09:05

≪이 기사는 05월20일(06:51)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세계 항공업 피해가 막심한데요. 여기에 못지 않은 타격으로 생사의 기로에 선 산업이 있습니다. 바로 호화 유람선 산업입니다.

이용 고객수 기준 세계 2위 유람선 운항업체인 로열캐리비언크루즈는 지난 19일 32억달러(약 4조원) 규모의 3년 및 5년 만기 담보사채 사모 발행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는데요. 이자율이 자그마치 연 11% 안팎에 달합니다. 호화 유람선 28척을 담보로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로부터 충분한 신뢰를 얻지 못한 탓입니다.

유람선사들은 지난 2월 일본 요코하마항에 ‘격리’ 정박했던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사태의 악몽 이후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는 700여명의 코로나19 확진자와 14명의 사망자를 냈습니다.

코로나19가 세계적 대유행으로 번지자 무디스는 지난 3월 로열캐리비언크루즈의 신용등급을 ‘Ba2’로 두 단계나 떨어뜨렸습니다. 이전에 투자적격 신용을 갖췄던 채권은 단숨에 기관투자가들이 기피하는 ‘쓰레기(junk)’로 추락했죠. 1분기 실적도 충격적이었습니다. 유람선 이용객 실종으로 3개월 동안 14억달러의 순손실을 냈습니다. 뉴욕증권거래소 상장 주식 가격은 작년까지 130달러를 웃돌았으나, 최근 40달러 수준으로 주저앉았습니다.

며칠 앞서 자금을 조달한 세계 굴지의 유람선사 바이킹크루즈도 사정은 비슷했습니다. 3년 및 5년 만기 담보사채를 발행했는데요. 연 12% 안팎의 금리를 제시해야 했습니다.

한국에서 유람선을 운항하는 회사들도 비록 규모가 훨씬 작고 운항 시간도 짧지만 그 피해가 작지 않았을 텐데요. 잘 알려진 내륙 유람선사로는 이랜드크루즈(한강)와 현대해양레져(인천), 충주호관광선(충북) 등이 있습니다. 다행히 충주호관광선은 20일 정도만 문을 닫았다가 3월 하순부터 운항을 재개했고, 현대해양레져는 6월부터 운항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이랜드크루즈는 정상 운항 중입니다.

이중 유일한 외부감사 법인인 이랜드크루즈의 경우 지난 2~3월 운영자금 부족으로 모회사인 이랜드파크로부터 모두 세 차례에 걸쳐 35억원의 운영자금을 빌려야 했습니다. 만기는 모두 1년, 이자율은 연 4.60%였습니다.

이랜드크루즈는 코로나19 이전부터 자본을 모두 까먹고 빚만 남은 완전자본잠식 상태입니다. 그래도 작년엔 매출 149억원, 영업이익 14억원으로 양호한 수익성을 보였는데요. 이번 코로나19로 경영 정상화 시점은 더 멀어질 것 같습니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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