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6월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을 앞둔 일본에서 '괴롭힘 보험'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출산·육아기의 여성 직장인을 차별하는 '마타하라('모성'을 뜻하는 '마터너티'와 '괴롭힘'을 뜻하는 '하라스먼트'를 결합한 일본식 조어)'로까지 보장대상이 넓어지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기업에 기자회견과 사과문 작성법을 지원하는 상품까지 등장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도쿄해상일동화재보험, 손보재팬, 미쓰이스미토모해상화재보험, 아이오이닛세이동화손해보험 등 4대 손해보험사의 괴롭힘 보험 신규 계약규모가 2015년 1만7000건에서 지난해 6만6000건으로 3.8배 증가했다고 20일 보도했다.
괴롭힘 보험은 기업이 가입하는 상품이다. '직장내 괴롭힘 행위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종업원에게 손해배상 소송을 당할 경우 소송비용과 보상금을 지급한다. 종업원 1000명 규모의 제조업체가 연간 90만엔(약 1000만원)짜리 상품에 가입하면 최대 3000만엔(면책 10만엔)까지 보상받을 수 있다.
단 가해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는 보상하지 않는다. '보험에 가입했으니까 직장내 괴롭힘을 방치해도 상관없다'는 식의 도덕적해이를 막기 위해서다.
괴롭힘 보험 시장이 급성장하는 건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을 앞두고 기업의 경각심이 높아져서다. 일본은 오는 6월 괴롭힘 금지에 대한 사규 제정과 상담창구 설치를 의무화하는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을 대기업부터 순차적으로 실시한다. 중소기업은 2022년 4월부터다.
도쿄해상의 경우 올 1~3월 대기업의 계약규모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배 늘었다. 손보재팬은 지난해 전체 계약수가 전년 대비 2배 증가했다. 노동 분쟁에서 직장내 괴롭힘이 차지하는 비중도 커지고 있어 기업이 대비할 필요성도 높아지고 있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2018년 직장내 괴롭힘에 대한 상담건수는 처음 8만건을 넘었다. 현재 직장내 괴롭힘과 관련한 분쟁이 개별 노동분쟁의 4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도 높아졌다.
괴롭힘 보험으로 성장 정체를 타개하려는 손보사들의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일본 손보시장의 성장률은 수년째 연 1%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보상대상 확대는 기본이다. 성희롱(세쿠하라)과 위계에 의한 괴롭힘(파와하라)은 2016년 이미 보상대상에 편입됐다. 2017년에는 가족을 병간호하는 직장인을 차별하는 '케아하라('케어'와 '하레스먼트'의 합성어)'와 마타하라가 추가됐다. 손보재팬은 올 2월 직장 동료간 괴롭힘을 뜻하는 '모라하라('도덕'을 뜻하는 '모럴'과 '괴롭힘'을 뜻하는 '하라스먼트'를 결합한 일본식 조어)' 보상상품까지 내놨다.
보상대상을 확대하는 것만으로는 차별화가 어려워지자 손보사들은 보상을 받을 수 있는 피해자의 범위를 경쟁적으로 넓히고 있다. 도쿄해상은 종업원 뿐 아니라 고객 관련 성희롱도 보상하는 옵션을 출시했다. 미쓰이스미토모해상과 아이오이손보는 작년 10월부터 계열회사 직원으로 보상범위를 넓혔다.
손보재팬은 자원봉사자도 보상받을 수 있는 상품과 문제가 발생했을 때 기자회견과 사과문 작성법을 지도하는 상품까지 내놨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