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中企 납품단가, 상생협력으로 풀어야

입력 2020-05-20 17:51   수정 2020-05-21 00:14

“최근 3년간 최저임금이 30%가 넘게 올랐는데도 납품단가는 매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더 버티기 힘든 상황입니다.” 필자가 지난 4월 ‘코로나19 현장 순회간담’ 때 만난 지방 중소기업인의 하소연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납품단가 실태조사를 해 보니 재료비, 노무비 등 공급원가 상승분을 납품단가에 반영하지 못한다는 중소기업이 60%에 달했다. 납품단가를 제대로 받지 못해 속앓이하는 중소기업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기업과의 양극화도 날로 심해지는 추세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전체 기업 수의 0.3%인 대기업이 전체 영업이익의 64%를 차지하고 있고, 기업 수의 99%를 헤아리는 중소기업의 영업이익 비중은 22%에 머물고 있다. 대·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도 2.2배나 벌어졌다. 대기업 근로자는 월 급여가 501만원인 데 비해 중소기업 근로자는 231만원 수준이라는 통계도 있다. 이익이 많이 나는 대기업 근로자의 임금과 복지는 늘어나는 반면 중소기업 근로자의 형편은 나빠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이처럼 대·중소기업 간 격차가 커진다면 중소기업은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다. 이런 대·중소기업 간 격차 확대에 대해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중소기업의 위기는 곧 노동의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납품단가가 아무리 박해도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납품단가 조정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해당 대기업과의 거래가 끊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역대 정부는 상생협력, 동반성장, 경제민주화 같은 정책을 펼쳐 왔지만 중소기업이 피부로 느낄 만큼 개선되지는 않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작년 12월 당·정·청 협의를 거쳐 중소기업중앙회에 납품단가 조정협의권을 부여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기반으로 중기중앙회는 최근 ‘대·중소기업 납품단가 조정위원회’를 출범시켰다. 21대 국회에서 중기중앙회의 납품단가 조정협의권이 연내 법제화되면 위원회는 대기업과의 납품단가 조정협의에 중추적 역할을 다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또 중기중앙회는 표준원가센터를 설치해 업종별 표준단가도 산출할 방침이다. 대기업과의 납품단가 조정협의 과정에서 신뢰할 만한 자료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아울러 한국노총과 함께 불공정거래 신고센터를 공동 운영하는 등 불공정한 납품단가 시정을 위한 노력도 강화할 계획이다.

물론 기업 간 사적 거래인 납품단가 문제를 정부나 법의 힘을 빌려 강제로 조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민간에서 자율적으로 조정하고 협력하는 것이 시장친화적이고 효과적이다. 이를 위해 중소기업중앙회는 우선 10대 그룹과의 상생협력 방안을 추진할 방침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갈등상황을 법으로 해결하기에 앞서 서로 상생·협력할 수 있는 민간 중심의 틀을 갖추기 위해서다.

중소기업의 납품단가 문제는 정부 등 조달시장에 진출할 때도 겪는 어려움이다. 중소기업의 판로지원을 위해 ‘중소기업제품 우선 구매제도’ 같은 조달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정작 최종 낙찰가격은 시장가격보다 낮아 지원제도로서 취지가 무색한 게 현실이다. 이런 문제는 계약 담당 공무원들도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감사원 감사 등을 이유로 개선되지 않고 있다. 중소기업 지원 차원에서 조달단가도 시장가격 수준으로 현실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납품단가 제값 쳐주기는 대·중소기업 간 격차를 해소하고 경제를 선순환시키는 시작점이다. 중소기업이 일한 만큼 대가를 받아야 기술을 개발하고, 임금을 제대로 지급해 젊은이들이 중소기업을 찾게 할 수 있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자연생태계가 복원된다는 이야기들이 지구촌 곳곳에서 들리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의 뉴노멀(새로운 표준)로 대·중소기업 간 납품단가 문제도 새롭게 복원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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