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2위 렌터카업체 허츠가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102년 역사 기업이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한 손실을 이기지 못했다.
2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허츠는 이날 델라웨어 파산법원에 미국 자사와 캐나다 자회사 등에 대한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이날 만료가 예정됐던 자동차 리스대금 상환기한을 재연장받지 못해서다. 허츠는 지난달 대금 상당 부분에 대해 상환 기한을 넘겼다. 이후 채권단과 상환 유예·면제 협상을 벌였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허츠는 코로나19 사태로 큰 타격을 받았다. 허츠의 사업 수입 중 상당 부분은 공항 인근 영업소를 통한 여행객 렌터카에서 나온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여행객이 급감하면서 매출이 크게 줄었다. WSJ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해 사실상 유휴 상태에 들어간 허츠 차량은 약 70만대에 달한다. 평소라면 보유 중인 자동차 일부를 중고차로 내다 팔아 수요 감소에 대응했겠지만 이번엔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는 평이다. 미국 전역에서 경제활동이 멈춰 중고차 수요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중고차 시세가 꺾이면서 보유 중인 자산 평가도 크게 깎였다.
허츠는 코로나19 이전에도 이미 영업 손실을 키우고 있었다. 우버 등 공유차량업체들이 규모를 키우면서 설 자리가 줄었기 때문이다. 작년에만 약 5800만달러(약 719억원) 손실을 봤다. 4년 연속 손실이었다. 허츠는 코로나19 위기로 미국 연방정부에도 지원을 요청했으나 후순위로 밀린 것으로 알려졌다.
허츠는 지난 3월부터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작년 말 기준 약 3만8000명이었던 직원 중 1만2000여명을 해고하고, 4000명은 무급휴직으로 돌렸다. 차량 구매비는 90% 삭감했다. 이를 통해 연간 25억달러(약 3조 1010억원)를 절감하려 했으나 현금난을 이기지 못했다. 허츠가 법원에 제출한 서류에 따르면 허츠는 총자산을 258억달러(약 32조50억원), 부채규모는 244억달러(약 30조 2680억원)로 표시했다. 블룸버그통신은 관계자를 인용해 “허츠가 현재 쓸 수 있는 현금은 약 10억달러(약 1조 2405억원) 수준”라고 보도했다.
폴 스톤 허츠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성명을 통해 “코로나19가 사업에 미치는 영향이 심각한데, 여행 사업과 경제가 언제 반등할지는 불확실한 상황”이라며 “이같은 상태가 장기화 될 경우를 대비해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밝혔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허츠는 코로나19가 창궐한 이래 미국에서 파산보호를 신청한 기업 중 손꼽히게 규모가 크다. 허츠는 세계 각국에서 지점 1만2400여 곳을 운영하고 있다. 이번 파산보호 신청에는 유럽·호주·뉴질랜드 지사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간 미국 백화점기업 JC페니와 니만마커스, 의류 브랜드 제이크루, 에너지기업 위팅페트롤리움 등이 파산신청을 했으나 모두 허츠보다는 규모가 작다.
법원이 기업을 청산하기보다 존속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해 파산보호 신청을 받아들이면 법정관리가 시작돼 채무상환이 일시적으로 연기되면서 회생절차에 들어간다.
전문가들은 허츠가 파산 절차에 돌입할 경우 자동차 업계에도 상당한 영향이 갈 것으로 보고 있다. 필요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보유 차량을 내다팔면서 시장에 중고차 물량이 대거 쏟아질 가능성이 높아서다. 허츠 등 렌터카 기업은 렌터카 기단을 별도 금융자회사로부터 임대하고, 이를 담보로 운영 자금을 빌린다. 허츠도 차량담보부 채권 규모가 144억 달러(약 17조 8632억원)에 달한다. WSJ는 “허츠의 차량담보부 채권이 워낙 광범위해 채권보유자들과의 조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허츠 관계자는 “스톤 CEO가 자산유동화증권을 보유한 채권단을 달래기 위해 연말까지 자동차를 매달 3만 대 이상씩 팔자고 제안했다”고 밝혔다. 조셉 아코스타 파산법률 전문 변호사도 블룸버그에 “허츠가 채무를 갚고 살아남기 위해선 영업 규모를 줄이고 자동차 등 보유 자산을 매각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경우 이미 약세인 미국 중고차 값이 폭락하고, 연쇄적으로 새 차를 사려는 수요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투자기업 벤치마크의 마이클 워드 애널리스트는 “허츠가 채무 상환을 위해 보유 차량 자산을 청산할 경우 미 자동차 산업에 상당한 리스크가 발생한다”며 “수개월에 걸쳐 물량을 덜어내는 동안 중고차 가격이 떨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WSJ은 “중고차 가격이 4월 사상 최저 수준을 낸 이후 수요가 조금씩 회복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시점에 허츠 파산 소식이 나왔다”고 지적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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