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임위원장 ‘자리 전쟁’
김영진 민주당·김성원 통합당 원내수석부대표는 24일 회동에서 21대 국회 상임위원장직 배분 방안을 논의했다. 양당 모두 핵심 상임위원장직을 양보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라 최종 합의까진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상임위원장직은 의석 비율에 따라 교섭단체끼리 나눠 갖는 게 국회 관행이다. 21대 의석수를 고려하면 민주당은 전체 18개 상임위 중 10~12개, 통합당(미래한국당 포함)은 6~8개의 위원장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여야가 상임위원장 협상에 ‘올인’하는 것은 누가 위원장이 되느냐에 따라 정국의 주도권을 쥘 수도, 뺏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상임위원장은 회의를 열고(개의) 중단하거나(정회) 해산(산회)할 수 있다. 회의 안건을 정하고, 각 의원에게 발언권을 주거나 뺏을 수도 있다. 통상 상임위원장이 발의하는 법안 가결률은 일반 의원은 물론 당 지도부보다도 높다. 그러다보니 소관 부처들도 위원장의 눈치를 많이 볼 수밖에 없다. 의원회관 사무실과 별도로 위원장 사무실이 본청에 마련되고, 국회의원 월급 외에 200만원의 업무추진비와 기타 운영비 100만원을 추가로 받는다.
국회법상 다음달 8일까지는 상임위 구성을 마쳐야 한다. 하지만 자리를 탐내는 사람이 워낙 많아 기한을 넘길 가능성이 크다. 13대부터 20대 국회까지 원구성에만 평균 41.4일이 걸렸다. 국회 관계자는 “상임위원장은 의정활동의 꽃”이라며 “누구나 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그만큼 조율이 어렵다”고 했다.
‘알짜 상임위’ 누구 손에
예산 심사를 맡는 예결위원장은 여야 할 것 없이 가장 탐내는 자리다. 위원장은 물론 예결위원을 하고 싶어 하는 의원들 간 다툼이 벌어질 정도다. 예산 심사권을 쥐면 협상 주도권 확보는 물론 지역 예산을 끼워넣기도 좋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가 최근 “예결위원장은 집권여당이 맡아 책임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발언한 배경이다.
‘상원 의장’ 격인 법사위원장을 누가 맡을지도 관심이다. 체계·자구 심사권을 갖고 있는 법사위원장은 다른 상임위에서 올라오는 모든 법안에 제동을 걸 수 있다. 외교통일위원장은 외유라는 비판을 피하면서 해외 순방을 다닐 수 있어 다선 의원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고,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장은 지역 사업을 추진하기 좋은 데다 피감기관이 많아 권한이 막강하다.
국가정보원 등을 소관 기관으로 둔 정보위 위원장은 언론 노출이 잦아 이름을 알리는 데 유리하다는 게 장점이다. 정보위원장직은 통상 여당이 맡아왔지만 20대엔 협상 과정에서 바른미래당 몫이 됐다. 정보위원장이었던 이학재 의원이 자유한국당(통합당의 전신)으로 복당하면서 정보위원장 자리를 유지하겠다고 주장해 ‘먹튀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국회 관계자는 “통상 운영위와 정보위는 여당이 맡는 경우가 많지만 여야가 ‘딜’ 하듯이 주고받다 보면 관례가 깨지기도 한다”고 했다.
‘임기 쪼개기’ 편법도
상임위원장을 원하는 사람이 많다 보니 한정된 자리를 둘러싸고 다툼도 잦다. 위원장은 보통 3선이 맡는데, 민주당의 경우 3선 의원만 21명이다. 전반기 상임위원장이 되려면 2 대 1의 경쟁을 뚫어야 한다는 뜻이다. 통합당은 4선 의원들까지 대거 경쟁에 뛰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상임위원장을 못 하는 3선 의원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상임위원장 임기는 전·후반기 나눠 2년이지만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워낙 많아 미리 합의하고 1년씩 임기를 쪼개 맡는 경우도 많다.
상임위원장 선출 과정이 중진 의원들의 ‘자리 나눠먹기’로 변질되면서 상임위의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나온다. 상임위에 맞는 능력보다는 사실상 선수(選數)와 의원 개인의 이권에 따라 배치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 공화당은 ‘상임위원장 경선제’를 시행한다. 전문성만 있으면 초·재선 의원에게도 기회를 주겠다는 취지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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