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빔]연간 45조원 중고차시장의 치열한 암투

입력 2020-05-25 08:00   수정 2020-05-25 08:01


 -거래 대수 280만대, 금융 규모만 10조원

 중고차 시장을 두고 끝없는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거래 증가폭은 줄었어도 여전히 연간 280만대가 새로운 주인을 찾아가며 35조원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금융 규모도 10조원에 이른다. 새로운 주인을 찾기 전 점검 비용도 적지 않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끝없는 이해 갈등이 벌어지는 중이다.


 기본적으로 중고차는 이미 사용된 자동차라는 점에 문제의 본질이 있다. 사려는 사람은 저렴하되 고장 없는 차를 원하지만 파는 사람은 누군가 이용했던 차여서 고장이 전혀 없음을 담보하지 못한다. 이런 이유로 소비자 민원이 끊이지 않자 정부가 믿고 거래할 수 있는 조건을 하나 만들었다. 판매자가 '1개월 또는 2,000㎞ 이내' 보증수리를 해주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것도 부족해 해당 중고차의 성능 점검 후 그 결과를 구매자에게 건네주는 것도 도입했다. 이른바 '성능점검기록부' 발급제도다. 

 그런데 여기서도 문제가 해결되지 못했다. '성능점검' 자체에 대한 신뢰성 때문이다. 이유는 점검자가 곧 판매자의 고객이라는 점이다. 점검해주고 돈 버는 사람에게 판매자가 점검을 맡기지 않으면 검사자의 수익이 줄어든다. 그러니 판매자가 요구하면 '문제 있음'이 간혹 '문제 없음'으로 둔갑하기 일쑤다. 

 -판매자와 성능점검자, 피할 수 없는 갑을 관계
 -중고차 성능점검 신뢰도 낮아

 그래서 성능점검에 문제가 있다면 누군가 책임을 지도록 하는 보증 방식을 도입했다. 제3자가 객관적으로 성능점검에 문제가 없음을 보증하고, 문제가 생기면 보증하는 사람이 손해를 배상하는 것이다. 하지만 보증은 의무가 아니어서 문제가 사라지지 않았다. 설령 보증한다 해도 점검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문제점이 드러났을 때 책임을 미루기 급급했다. 

 그러자 성능점검에 문제가 있어 소비자 피해가 발생할 때는 보험사가 배상하도록 의무화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보험료와 책임 범위가 문제로 지적됐다. 보험사가 중고차 판매자로부터 받는 보험료는 고스란히 거래 가격에 반영됐고 보험사 또한 손해배상을 줄이기 위해 피해자가 보상을 요구하면 갖가지 이유를 들어 거절했다. 판매자가 보험사에 내는 보험료를 실질적으로는 소비자가 부담하되 보상은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래서 구매자가 보험을 선택적으로 가입하는 방식이 차라리 낫다는 의견이 개진됐다. 소비자가 중고차 구매를 결정했으면 직접 보험사를 골라 성능점검 보험 상품에 가입하고 점검서에 기재된 내용과 다른 문제가 발생하면 보험사에게 보상을 청구하는 방안이다.

 그러나 이런 방안을 담은 법안이 최근 국회 본회의에 오르지 못하고 결국 폐기됐다. 그러자 중고차 업계는 즉각 반발했다. 보험 가입 여부의 선택권을 구매자가 가져가는 게 당연한데 보험업계의 압력에 굴복, 좌절됐다고 말이다. 실제 보험사 입장에선 연간 거래되는 280만대가 모두 성능점검 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하자 꽤 많은 보험료 수익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새 차와 달리 중고차는 보상 거부 이유를 많이 만들 수 있어 내심(?) 성능점검 보험이 나름 수익 시장으로 변모했다는 얘기도 흘러 나온다. 물론 보험업계는 지난해 하반기 5,000건에 30억원 정도의 보상금이 지출됐다고 설명하지만 보험료로 거둬들인 비용보다 보상 금액이 많았다면 제도 폐지에 동참했을 것이다. 하지만 '찬성'을 나타냈으니 성능점검 의무 보험은 분명 수익이 된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중고차 성능점검 보험 상품, 선택 or 필수?
 -중고차 업계 '선택' vs 보험 업계 '필수'

 그렇다면 보험 가입 여부의 선택권은 누구에게 주는 게 맞는 것일까? 중고차 업계는 보험 가입은 판매자가 의무적으로 하지만 어차피 보험 비용은 거래되는 중고차 가격에 포함돼 있어 가입 여부는 소비자가 선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보험'이 일종의 선택 옵션이 돼야 한다는 의미다. 반면 보험업계와 일부 시민단체들은 소비자 보호를 명분으로 보험 가입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돼야 한다고 맞선다. 양측 모두 소비자 보호를 앞세우지만 이면에는 각각의 계산이 돌아가는 셈이다. 보험사는 가입 필수를 통해 보험료 수입이 늘어나는 것이고 중고차 판매자는 보험료가 거래 가격에 포함돼 소비자들이 비싸게 느끼는 만큼 이를 덜어내려는 의도다. 

 그러나 둘 가운데서 전문가들은 선택권이 소비자에게 있어야 한다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고장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중고차' 문제는 그 어떤 것으로도 해결이 쉽지 않은 탓이다. 기본적으로 '1개월 또는 2,000㎞ 이내'의 보증이 있으니 추가적인 문제 발생에 대해 보상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철저하게 소비자의 몫이란 뜻이다. 

 이런 가운데 한편에선 보험 가입을 소비자가 선택하도록 하되 동시에 중고차 중개사업의 장벽을 거둬내야 한다고 말한다. 투명한 거래와 확실한 품질 보증을 내걸고 거래의 신뢰성을 높이는 사업자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의미인데, 대표적인 사례가 대기업의 진출이다. 하지만 대기업 진출은 정부가 소상공인 보호 차원에서 막았다. 그럼에도 믿을 수 있는 거래 시스템을 요구하는 소비자들은 오히려 대기업 진출을 원했고, 이달 안에 중소기업벤처부는 중고차 시장의 대기업 진출 허용 여부를 발표하게 된다. 앞서 동반성장위원회는 대기업의 중고차 사업 진출 장벽은 소상공인 보호 목적에 맞지 않아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한 마디로 성능점검의 신뢰성을 두고 보험 가입 선택권을 소비자에게 주는 동시에 소비자 또한 믿을 수 있는 중고차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야 한다는 뜻이다. 

 중고차는 그 어떤 제도를 도입해도 '중고(中古)'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어떻게 관리됐고, 누가 탔으며 어디를 다녔는지 구매자는 알 수 없어서다. 이는 판매자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블록체인 등으로 공장 출고 후 모든 주행 및 정비 이력을 관리하려는 움직임도 있지만 아직은 요원하다. 따라서 보험 가입 여부, 그리고 제품을 판매하는 사업자도 소비자로부터 선택을 받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 대기업이라고 신뢰도가 높은 것은 아니지만 소비자들이 대기업 진출을 원하는 것은 성능점검 만큼은 믿을 수 있고, 문제가 생기면 충분히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여기는 탓이다. 


오아름 기자 or@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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