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 90% 받아간 재난지원금, 12조 어디에 썼나 보니…

입력 2020-05-24 15:04   수정 2020-05-24 15:18



전국민의 90 이상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전 국민 긴급재난지원금을 수령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4일부터 23일까지 긴급재난지원금 수령 가구는 2010만가구, 지급 액수는 총 12조6798억원으로 각각 집계됐다고 24일 밝혔다. 지급 대상 2171만가구 가운데 92.6%가 지원금을 받은 것이다.

재난지원금 지급이 시작된지 10일이 넘어서고 이처럼 대다수 국민들이 수령하면서 소비 진작에는 상당한 효과가 나타난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생필품 구입 등이 늘면서 식음료, 유통 업체들의 매출 호조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적지않은 문제점들이 부각되고 있다. 음식점, 숙박, 여행업 등 코로나 집중 타격 업종은 지원금 수혜가 거의 없는 반면, 비교적 충격이 덜하거나 오히려 특수를 누렸던있는 소매, 유통 분야에 혜택이 집중되는 모양새다. 대기업 제품, 대형 마트 등에 대한 사용을 막다보니 경쟁관계에 있는 외국계 기업들이 수혜를 입는 점도 여전히 논란이다.

◆물 만난 편의점, 최대 수혜

24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 4일부터 21일까지 지급된 긴급재난지원금 규모는 총 12조1068억원이다. 긴급재난지원금 총 예산인 14조2448억원 중 85%가 지급 완료된 것이다. 수령 가구는 1921만가구로 전체 지급 대상 2171만가구 중 88.5%가 지원금을 받았다.

긴급재난지원금 덕에 특수를 누리고 있는 곳은 편의점업계다. 재난지원금이 백화점, 대형마트, 이커머스 등 대형 유통채널에서 쓸 수 없다보니, 사용이 편리하고 접근성이 좋은 편의점 장보기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고가 상품과 생필품 수요를 중심으로 매출이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븐일레븐이 재난지원금 사용이 시작된 13일부터 5일간 매출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남성용 면도기 및 남성 화장품 매출은 40% 넘게 늘었고, 와인과 양주 등도 12~17% 판매가 증가했다. 아이스크림은 나뚜루 하겐다즈 등 고가에 속하는 제품의 매출이 20% 넘게 뛰었다.

같은 기간 다른 편의점인 이마트24에서는 자녀 관련 생필품 및 양주, 이어폰·에어팟 케이스 매출이 큰 폭 신장했다. 어린이 음료가 71.5%로 가장 높은 판매 증가율을 나타냈고 기저귀(54.1%), 완구(24.7%), 아기물티슈(18.3%) 등의 순이었다. 양주와 이어폰·에어팟 케이스는 20% 넘게 증가했다.

GS25와 CU편의점에선 헤어, 바디세정용품, 스포츠용품이 100~200% 폭증했다. 과일과 채소, 식재료 매출도 14∼16% 늘었다. GS25 측은 "1인가족 위주로 정육, 신선식품 등의 편의점 장보기가 늘어나고 있다"며 "완구류 등 높은 단가의 소비가 늘어나는 점도 주목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뤘던 미용, 네일아트도 이참에...

그동안 미뤘던 제품을 구입하거나 서비스를 받으려는 수요도 늘고 있다. 미용실, 네일 아트숍, 안경점, 세차장, 사진관 등이 대표적이다.

성형외과·피부과 업계도 때아닌 특수를 맞았다. 재난지원금은 병원 매출 규모에 관계 없이 소규모 의원 및 종합·대학병원에서 쓸 수 있다. 건강보험 비급여 진료인 탈모시술이나 미용성형 비용 결제도 가능하다. 병원의 마케팅까지 더해져 성형수술, 미용시술을 받으려는 수요가 몰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다만 일부 업종에만 소비가 몰리면서 긴급재난지원금 사용처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동일한 업종이라도 외국기업 매장은 쓸 수 있는데 국내기업 매장에선 사용이 불가한 점은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다. 예를 들어 롯데하이마트에서 국산 전자제품을 구매하는 건 안되지만, 애플 매장에서 수입품을 사는 건 되는 식이다.

여기에 대형마트에 납품하는 중소기업들이 재난지원금 혜택을 받지 못하는 반면 고급식당을 이용하고 골프 전문점에서 골프채를 사는 것은 가능한 점도 문제다. 글로벌 가구 브랜드 이케아가 대형마트 규제에서 빠진 점도 도마 위에 올랐다. 가구협회는 "이케아에서 긴급재난지원금을 사용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긴급 성명까지 냈다.

◆"돈 벌던 곳들만 더 벌었다" 지적도

상황이 이렇다보니 기존에 돈을 벌던 곳만 더 배불리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코로나19 사태에 직격탄을 맞은 여행업, 영화관, 공연 관련 업종들도 재난지원금 수혜는 남의 얘기다. 세계 주요국의 도시 봉쇄로 이동에 제한을 받는데다, 불특정 다수가 모이는 장소에 대한 방문을 여전히 꺼리고 있어서다.

유흥업종으로 분류돼 사각지대에 몰린 자영업자들도 울상이다. 스크린 골프장, 탁구장, 당구장 등의 업종은 대부분 주류 등을 취급하는 유흥사치업종으로 분류돼 있다. 긴급재난지원금 사용 제한 대상이어서 여전히 생존 위기에 몰려있다는 아우성이 들린다.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한상총련)는 "스포츠 여가 업종을 필드 골프장이나 유흥사치업종과 함께 제한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사용처 제한을 풀어달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이에 정부는 보완책을 고민 중이다. 사용처를 둘러싼 형평성 논란을 줄이고 사용 가맹점을 넓히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윤종인 행정안전부 차관은 "논란을 인지하고 있다"며 "처음하는 일이다 보니 실수가 있었다"고 언급했다.

윤 차관은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목적 달성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계속 검토하겠다"며 "개별 가맹점을 넣고 빼고 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논의 중이지만 아직 어느 업종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채선희 한경닷컴 기자 csun0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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