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안에 따라 엘리베이터 1대마다 개별안전인증이 의무화되면서 800~1000쪽에 이르는 기술서류를 마련해야 하는 것도 큰 부담이었다. A사장은 “안전인증을 획득하지 못한 엘리베이터 완성품은 고철에 불과했다”며 “강화된 승강기 제조업 요건과 안전인증 규정에 막혀 출고가 묶이니 고정비로 인한 채무가 눈덩이처럼 늘었다”고 토로했다.
◆세계 3대 승강기 시장서 무슨일이?
한국은 중국, 인도에 이어 세계 3대 엘리베이터 시장(신규 설치 기준)이다. 매년 4만여대가 신규 설치되고 72만대가 가동되고 있으며 연간 수출 규모만 3000억원대다. 관련업체는 1200여곳으로 종사자는 2만여명에 달한다.
이런 국내 엘리베이터 산업이 규제에 눌려 신음하고 있다. 지난해 3월 안전규제가 대폭 강화된 승안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을 시행되면서다. 승강기관련 협동조합에 가입된 전국 500여개 중소기업 가운데 40여곳이 최근 탈퇴했다. 월 5만~7만원 정도인 조합 회비가 부담될 정도로 경영난에 처했기 때문이다.
승강기 사고 문제는 행정안전부의 오랜 골칫거리였다. 한해 승강기 갇힘 사고로 119 구급대원이 출동하는 건수만 2만건이 넘고, 매년 사고로 3명 정도가 목숨을 잃으며 국정감사때마다 지적 받는 ‘단골 주제’였기 때문이다. 작년 11월 현대 티센크루프 오티스 미쓰비시 등 엘리베이터업체 최고경영자(CEO)들이 모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 불려나가 국회의원들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늘어난 인증료 부담만 수천만~수억원
행정안전부는 작년 3월 엘리베이터 대형사의 유지보수 서비스 직영 비율 규제를 새롭게 신설하고, 인증 대상 부품을 20종으로 확대하는 규제(승안법 시행령·시행규책 개정안)를 시행했다. 또 작년 12월 주요 대형사를 모두 하도급법 위반 혐의로 형사 고발한 데 이어 올해 3월엔 “승강기 점검시 2명이상이 동시에 투입돼야 한다”는 ‘2인1조’규정을 시행하는 등 연거푸 ‘규제’을 쏟아냈다.
행안부는 승안법 개정을 통해 인증 대상 부품을 기존 12종에서 20종으로 확대하고 승강기 완제품의 안전인증을 의무화했다. 엘리베이터 고장의 원인이 되는 중국산 불량 부품을 쓰는 관례를 막기위해서다. 하지만 인증에만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의 비용이 들어 업계에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엘리베이터 부품업체 S사 사장은 “법 개정으로 똑같은 부품을 사용하더라도 사용하는 회사마다 안전인증을 처음부터 다시 받게 됐다”며 ”부품안전인증을 3년 주기로 반복해야 하는 까닭에 고정 비용 부담도 크게 늘었다”고 하소연했다.
서울 소재 엘리베이터 제조사인 H사는 지난달 전국 51개 현장에 대한 엘리베이터 개별안전인증 신청서류를 승강기안전공단에 접수했으나, 단 1개 현장만 받아들여지고 나머진 모두 반려됐다. 이 업체 관계자는 “엘리베이터 제조·설치업체 사장들은 건설업체 사장한테 상소리를 듣고 회사에 불을 지르겠다는 협박까지 받고 있다”며 “공공기관 발주 물량일 경우 계약 위반 사항으로 향후 입찰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어 답답한 상황이다”고 밝혔다. 수도권에서 5층 임대형 건물을 준공한 A씨 역시 건물을 다 짓고도 공단으로부터 엘리베이터 부품 인증을 받지못해 수개월간 분양을 못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관련법에 따르면 개별승강기안전인증 처리 기한은 20일이다. 하지만 800~1000장 분량의 기술서류를 마련하는 시간과 보완 서류의 제출·처리 등에 드는 시간을 따져보면 법 개정으로 완제품 인증에만 최소 4개월가량을 더 쓰게 됐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한 엘리베이터 제조업체 사장은 “승강기안전기술원의 인증 인력은 그대로인데 인증 부품수, 의무인증 항목이 갑자기 늘어나면서 과부하가 걸린 상황”이라며 “과거 산업통상부가 승강기업종을 관리하던 시절엔 산업육성 차원에서 가급적 인증을 늘리지 않았는데, 행안부는 승강기안전공단이 인증을 독점하도록 해놓고, 연간 수십억원씩 ‘인증료 장사’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 유례없는 갈라파고스 규제”
1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올 3월 시행된 ‘2인1조 규정’은 영세업체들에 엎친데 덮친 격이 됐다. 승강기 점검 현장에 2명 이상을 동시 투입토록 강제하면서 대부분 직원이 7~10명 수준인 전국 800여 유지보수업체들은 기존 현장검사 인력을 2배로 늘려야 하는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C사 사장은 “현재 대부분 중소기업들이 역마진을 감수하면서 승강기 한 대당 5만원만 받고 점검하고 있다”며 “2인1조 규정을 감안할때는 20만원 정도는 받아야하지만 출혈경쟁 탓에 그럴 수 없는 형편”이라고 토로했다.
세계 어느나라에도 비슷한 유형을 찾아볼 수 없는 ‘갈라파고스 규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 제도를 도입하기 전에 필요한 주요 선진국 유사 규제 비교 분석, 중소기업의 불만 반영, 치밀한 법리적 검토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D사 대표는 “세계적으로 현장근무를 2명 이상으로 강제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며 “현재 이 규정을 지킬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어 행안부가 업계 전체를 범법자로 만들고 있다”고 했다. 현대 티센크루프 오티스 등 엘리베이터 제조업체 대표들은 ”2명이 점검하면 오히려 소통에 문제가 생겨 사고율이 높아질 수 있다”고 탄원서를 냈지만 행안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2인1조'규정 놓고 부처간 엇갈린 견해
‘2인1조’규정을 놓고 부처간 해석도 엇갈리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지난 4월 이 규제에 대해 고용노동부에 질의하자, 고용부는 “산업안전규칙 취지상 해당 작업현장에서 차질 없이 수행될 수 있는 범위라면 작업 단위가 아닌 사업장 단위별로도 작업지휘자를 둘 수 있고, 그러한 경우 작업자는 1인이어도 된다”는 회신을 보냈다. 하지만 행정안전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현장 2인 1조 작업을 의무화하고 있다. 업계에선 “행안부가 산업안전 주무부처 견해도 무시하고 재량으로 규제를 강화한 것”이라며 “일자리를 강제로 늘리려는 욕심에서 벌어진 사태”라는 주장도 나온다.
중기중앙회는 지난달 28일 행안부에 2명 이상이 동시에 작업하지 않아도 되도록 규제를 완화해줄 것과 1년의 계도기간을 부여할 것을 건의했다. 중기중앙회는 “이번 규제로 신규 기술인력이 연간 800명씩 필요해진다”며 “코로나 사태로 유동성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업계의 어려운 상황을 이해해달라”고 호소했다. 중기중앙회는 조만간 행안부와 공청회를 열어 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승강기 사고를 막기위한 취지지만 약효를 발휘하지 못한다는 분석도 있다. 지난해 승강기 사고는 72건으로 전년(21건)의 3.4배로 급증했다. 승강기 고장도 3.8배로 늘어난 8256건을 기록했다. 승강기 고장신고가 의무화된 영향도 있었지만 신설된 규제가 사고를 줄이는데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 진단이다.
◆업계 "산업 고용측면 고려해야…규제 보완 시급"
업계에선 대형사 유지보수 직영비율(50%) 역시 과도하게 높아져(30%→50%) 중소기업 ‘인력 빼가기’가 심각한 만큼 비율을 다소 낮춰 현실화해야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공공기관 발주에서 인증 지체에 따른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제도가 나와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승강기 제조업체 관계자는 “민간 협회가 안전 인증 기준을 마련하는 데 참여하고 이에 대해 책임까지 지는 구조여야 안전이란 덕목과 승강기 업계의 진흥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고 했다.
업계에선 2009년 승강기 산업 담당부처가 산업자원부에서 행정안전부로 바뀌면서 규제가 대폭 늘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행안부가 승강기를 육성산업으로 보는 대신 사고 유발 산업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란 지적이다. 선진국 대다수는 승강기업종을 건설 산업 분야 부처에서 담당하고 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한 글로벌 승강기업체 관계자는 “선진국에서는 안전 확보와 효율적인 작업을 위해 작업 내용과 환경에 따라 작업 인원을 달리 규정하고 있다”며 “선진국 사례를 참고해 현실에 맞게 승강기안전관리법을 보완·개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민경진/안대규 기자 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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