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사진)는 지난해 6월 내한 당시 차기작에 대해 이렇게 귀띔했다. 약 1년 뒤 그의 말대로 ‘환생’을 소재로 한 새 장편소설 《기억》(열린책들)이 27일 출간된다. 최면을 통해 전생을 찾고 그 전생을 이용해 신화 속 존재를 파헤치는 독특한 내용의 소설이다. 핵심 소재는 불교의 윤회 사상과도 맞닿아 있는 ‘전생’과 더불어 인간이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수단인 ‘기억’이다. 집단 기억의 산물인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 기억을 잃어가는 알츠하이머 환자, 과거 전생을 불러내 기억을 되살리는 최면사 등이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고등학교 역사 교사인 르네 톨레다노는 프랑스 센강 유람선 공연장 ‘판도라의 상자’에서 최면술사 오팔에 의해 ‘퇴행 최면’에 성공한다. 최면 속 무의식의 복도에서 어떤 문을 연 르네는 1차 세계대전에서 비참하게 목숨을 잃은 그의 전생을 본다. 그 충격적인 기억에 의해 의도치 않게 사람을 죽이고 초조한 나날을 보내다 또다시 퇴행 최면에 들어가 자신에게 111번의 전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중 ‘아틀란티스’라고 부르는 전설 속 섬에 사는 그의 첫 번째 전생인 게브를 만난다. 대홍수로 바닷속에 잠겨 사라졌다는 아틀란티스에 대한 존재 증거를 현생에서 찾아내기 위해 르네는 최면으로 끊임없이 게브를 만나고 위기 때마다 다양한 나라와 다양한 시대의 전생을 열어 그 영혼들과 문제를 풀어간다.
자신의 원초적 존재이자 이상향인 게브와 그가 살던 아틀란티스를 기억해내기 위해 벌이는 르네의 모험을 통해 작가는 ‘인간의 정체성에서 기억이 얼마만큼 차지하는지, 인간이 어떻게 기억을 만들고 지켜나가는지’에 대한 화두를 끊임없이 던진다. 르네의 조력자로 나오는 오팔은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당신이 진정 누구인지 기억할 수 있나요’라고 질문한다. 르네도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는 우리가 누구인지 기억하기 위해서야. 기억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아. 현재에도, 앞으로도.”
전작 《죽음》에서 허세 가득한 프랑스 평론계와 순수문학 작가들을 풍자했던 작가는 《기억》에서도 일률적인 역사 교육만을 주입해온 프랑스 교육계를 재치있게 비판한다. 르네가 조지 오웰의 《1984》를 언급하며 “역사에 대해 사실을 확인하거나 검증할 생각조차 않은 채 남들이 생각하는 대로 생각하지만 누구도 그 모순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교육을 통해 사람들에게 망각을 가르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는 대목이 대표적이다.
작가는 전생을 통해 자신의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가는 인물들을 보여주며 개개인의 기억은 소멸될 수 있지만 그 기억들이 모이고 모여 집단의 기억, 즉 역사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용서가 망각으로 이어져선 안돼요. 바로 이 지점이 역사에 요구되는 역할”이라는 르네의 말은 과거사에 대한 기억을 잊어가는 사람들과 또 이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사회 속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따끔한 충고로 다가온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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