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프리즘] 균형재정, 2017년 前과 後

입력 2020-05-25 18:01   수정 2020-05-26 00:11

세입과 세출의 균형을 맞춰 재정수지가 펑크 나지 않게 관리한다는 뜻의 균형재정은 재정당국의 제1 원칙이었다. 매년 예산안과 함께 중기재정운용계획(향후 5년간 재정수입 및 지출 계획)을 발표할 때마다 기획재정부 당국자들 입에선 ‘균형재정’이 빠지지 않았다. 그러던 이 단어가 언제부턴가 조용히 사라졌다. 중기재정운용계획 최근 10년치를 들여다보면 이상한 숫자 흐름이 발견된다. 정확히 2017년 전과 후로 나뉜다.

2017년 전까지는 매년 재정운용계획상 잡힌 지출이 수입보다 적었다. 예컨대 2016년 내놓은 중기재정운용계획을 보면 이후 5년간(2016~2020년) 재정수입은 연평균 5.0% 증가로 짜인 데 비해 재정지출은 3.5% 증가 범위에서 통제하는 걸로 돼 있다. 지출을 수입보다 낮게 가져가 재정수지를 개선하기 위해서였다.

2017년부터 수입과 지출 숫자가 뒤바뀌기 시작했다. 2017년 중기재정운용계획상 수입은 5년간 연평균 5.5% 증가인데, 지출은 이보다 높은 5.8% 증가로 짜였다. 지출이 수입보다 많다는 것은 적자재정을 감수하겠다는 뜻이다. 수입과 지출 증가율은 2017년 역전된 뒤 그 격차가 <그래프>처럼 해가 지날수록 악어입처럼 벌어졌다.

수입보다 지출을 많게 가져가는 것은 경제위기 때나 있는 일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가 그랬다. 그렇다면 갑자기 2017년부터 지출을 다급히 늘릴 정도로 경제가 어려워졌을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경제는 순항하고 있었다. 이유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복지를 전면에 내세우며 지출 빗장을 풀어버린 탓이었다.

균형재정을 강조하던 당시 국가채무비율 40%(GDP 대비)는 일종의 마지노선과도 같았다. 하지만 지난해 5월 재정전략회의에서 “채무비율을 40% 이내로 관리하겠다”는 홍남기 부총리를 향해 문 대통령이 “근거가 무엇이냐”고 질타하듯 물은 뒤, 숫자는 자취를 감췄다.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을 내세워 채무비율 60%까지는 괜찮다고 한다. 돈 쓸 근거가 필요할 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는 게 IMF 권고다. IMF 고위 관계자에게 이메일을 보내 물었다. 이 관계자는 정치적 논란에 휩쓸리는 걸 원치 않는다며 익명을 전제로 답장을 보내왔다. 2018년 IMF 한국보고서 원문도 첨부했다.

그의 설명과 보고서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한국이 상대적으로 재정 여력이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고령화 등을 감안할 때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은 현 수준의 복지정책을 유지하더라도 2050년에는 100%대로 급증할 것이 확실시된다. 따라서 채무비율을 60%까지 늘리는 게 문제없다는 견해는 다른 변수를 무시한 단견이다.” 채무비율 100%는 재정위기로 국가부도 직전까지 갔던 그리스와 같은 수준이다. 이 관계자는 결론을 이렇게 내렸다. “현재 코로나 국면에서 단기적으로 재정확대는 불가피하다. 다만 재정지출을 늘리더라도 통제 범위를 명확히 설정해놓고 해야 한다. 그리고 세 가지 원칙, 일시적(temporary)이며 투명하고(transparent) 타깃을 정해(targeted) 해야 한다는 것이 IMF의 정책 제안이다.”

윤증현 전 기재부 장관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역대 최대 규모(28조4000억원)의 추경을 쏟아부으면서도 재정악화를 막아냈다. 적재적소에 투입해 효과를 극대화하면서 성장률 플러스를 지켜낸 결과다. 이런 기억 때문일까. 윤 전 장관 밑에서 금융위기 극복에 일조한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은 얼마 전 여당 의원들 앞에서 “적자국채를 발행해서라도 GDP를 키우면 채무비율 증가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수석이 기재부 경제정책총괄과장이던 때 그를 아꼈던 윤 전 장관은 안타깝다며 이렇게 얘기했다. “재정을 지금처럼 허투루 쓰면서 GDP를 늘린다고? 그렇게 생각하면 대단한 착각이다.”

jtch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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