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재정이 치료제이자 백신"…역대급 확장재정에 나랏빚 '초비상'

입력 2020-05-25 17:35   수정 2020-05-26 09:52


“누구를 위한 재정이며 무엇을 위한 재정인가.”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주재하며 첫머리에 던진 질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경제가 위기에 내몰린 만큼 적극적 재정정책이 필요하다는 반어법으로 풀이됐다. 문 대통령은 이어진 발언에서 재정의 적극적 역할을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전시 재정’을 주문하면서 “재정은 경제위기의 치료제이자 백신”이라고 했다. 지난해 이 회의에서 언급한 ‘적극 재정’보다 강도가 훨씬 높아진 표현이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회의 후 서면 브리핑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청와대는 올해뿐 아니라 내년까지 적극적 확장 재정 기조를 이어가기로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부가 재정만능주의에 빠지면 민간을 구축하게 될 공산이 크고, 재정건전성이 훼손되면 코로나 사태 이후 큰 후유증을 겪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재정건전성 위해서도 재정이 역할 해야”

국가재정전략회의는 청와대와 행정부, 여당의 최고 인사들이 참여해 중기 재정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최고 의사결정회의다. 2004년부터 매년 열리고 있으며 올해는 17번째 회의였다.

관심은 코로나 사태 위기 극복을 위한 재정의 역할과 재정건전성의 관계였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위기 극복과 경제 도약을 위한 재정운용방향’을 주제로 발제하면서도 건전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관심은 문 대통령의 선택이었다. 문 대통령은 “뼈를 깎는 지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면서도 “지금처럼 심각한 위기 국면에선 충분한 재정 투입으로 성장률을 높이는 것이 재정건전성을 회복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우선 재정을 투입해 위기를 극복하고, 향후 경제가 회복되면 그 결과로 세입이 늘어 재정건전성이 회복될 것이란 기대를 표출했다. 문 대통령은 “좀 더 긴 호흡의 재정 투자 선순환을 도모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길게 볼 때 그것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의 악화를 막는 길”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외국과 비교해 재정 여력이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현재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은 2차 추가경정예산을 포함해도 GDP 대비 41% 수준으로 110%에 이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크게 낮다”고 밝혔다.

“규제 혁신 없이는 나랏빚만 늘 것”

문 대통령이 더 과감한 재정 지출을 주문함에 따라 올해뿐 아니라 내년까지 ‘초확장 재정’ 기조가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당장 3차 추경 규모도 50조원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기재부는 당초 30조원 안팎을 검토하고 있었으나 여당이 40조원 이상의 규모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3차 추경이 50조원으로 결정되면 올해 예산 규모는 세 차례 추경을 합쳐 575조원, 재정 적자 규모는 140조원에 이른다.

내년 재정 지출 증가율이 최근 2개년과 마찬가지로 9%대에 정해진다면 내년 예산 규모는 560조원에 이른다. 올해 본예산(512조원)보다 50조원가량 늘어날 전망이다.

기재부는 작년과 올해 재정 지출 증가율을 9%대로 편성했으나 내년엔 6.5%로 낮출 계획이었다. 기재부 관계자는 “내년에도 코로나19 여파가 이어질 텐데 위기 극복을 위해 재정 지출 증가율을 낮추기엔 이르다는 의견들이 회의에서 제시됐다”고 전했다.

다만 당·정·청은 코로나19 위기 극복 이후엔 재정건전성 관리 노력을 강화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강력한 지출 구조조정과 탈루소득 과세 강화 등을 통해서다. 이 과정에서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확 늘어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제가 정상 궤도로 회복하려면 기업이 투자할 수 있도록 규제를 혁신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며 “이런 노력 없이 재정 지출만 늘리면 나랏빚만 급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내년까지 초확장 재정 기조를 유지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한국 국가채무비율은 작년 말 38.1%에서 올해 46% 근처까지 치솟을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 얘기처럼 3차 추경을 50조원으로 할 때의 얘기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단기간에 국가채무비율이 확 오르면 외국인 자본 유출이 채권시장까지 확대돼 대외건전성에 치명타가 된다”며 “올해까지는 재정을 확대한다 해도 내년 예산은 올해보다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민준/성수영 기자 morand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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