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2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을 소환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 분식회계 및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의혹을 두고 1년6개월 동안 이어져온 검찰 수사가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전망이 나온다. 검찰은 이 부회장 조사를 마치는 대로 다음달께 수사를 마무리할 것으로 보인다.
◆3년3개월 만에 검찰 소환된 JY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경제범죄형사부(부장검사 이복현)는 이날 오전 8시께 이 부회장을 소환해 조사 중이다. 이 부회장은 피의자 신분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날 비공개로 검찰청에 출석했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이 부회장을) 영상녹화실에서 조사 중이며, 점심식사는 청사 내에서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부회장이 검찰에 소환된 것은 2017년 2월 ‘국정농단 사건’에 휘말려 박영수 특별검사팀으로부터 조사를 받은지 3년 3개월 만이다. 그가 지난 6일 대국민 사과를 한 지 20일 만이기도 하다.
검찰은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합병하는 과정과 삼성바이오가 회계 기준을 바꾸는 과정에서 이 부회장이 얼마나 관여했는지를 캐물을 방침이다. 이 부회장의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를 위해 합병 당시 삼성물산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제일모직의 가치를 부풀렸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이 부회장은 제일모직 지분 23.2%롤 보유했지만 삼성물산 지분은 없었다.
검찰은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 의혹도 이 부회장 승계와 무관치 않다고 보고 있다. 삼성바이오는 회계처리 기준 변경으로 4조5000억원의 장부상 이익을 올린 혐의를 받는다. 2016년 참여연대와 심상정 정의당 의원 등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편법 회계를 통해 매년 적자를 기록하던 기업이 순식간에 우량 기업으로 바뀌었다”고 주장했다. 이후 증권선물위원회의 고발로 검찰 수사가 시작됐다. 삼성바이오는 제일모직의 자회사다. 역시 이 부회장이 지분을 다수 보유한 제일모직의 가치 상향을 위해 삼성바이오의 회계분식이 이뤄졌다는 논리다.
◆‘대국민 사과’ 수사에 영향 미칠까
이 부회장이 이날 소환되면서 1년6개월째 끌어오고 있는 이번 수사도 조만간 마무리될 전망이다. 검찰은 최근 삼성그룹 임직원들을 잇달아 소환하며 ‘혐의 다지기’에 들어갔다. 지난달 윤용암 전 삼성증권 사장, 정현호 삼성전자 사업지원TF장 사장, 최치훈 삼성물산 이사회 의장 등을 부른데 이어 이달 들어서는 장충기 전 삼성 미래전략실 차장,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 부회장 등이 중앙지검에 출석했다. 검찰은 조만간 주요 피의자에 대해 구속영장 청구나 기소 방침 등을 정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 수사는 그동안 우여곡절이 많았다. 검찰이 현재까지 소환한 삼성 관계자가 수백명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장시간 대규모 인원을 조사한 대형 수사다. 수사 초기 검찰이 '증거인멸 의혹'으로만 삼성 임직원 8명을 구속하며 '별건 수사' 논란이 일기도 했다. 다만 지난해 7월 김태한 삼성바이오 대표의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후, 검찰이 현재까지 사건 본류인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해 신병을 확보한 사례는 없다.
그동안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인력들이 ‘조국 수사’와 ‘국정농단 수사’ 등에 투입되면서 수사가 지연되기도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4·15 국회의원 총선 등 외부 요인으로 인해 조사 일정이 미뤄지기도 했다. 수사가 지연되다 보니 법조계 안팎에선 검찰이 이 부회장의 혐의를 입증하는데 난항을 겪고 있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왔다.
법조계에선 이 부회장이 지난 6일 직접 대국민 사과를 한 것이 수사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 부회장은 경영권 승계 논란과 관련해 “더 이상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며 자녀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승계 세습의 고리를 끊겠다는 것이다. 사과 발표 이후 공격적인 경영 행보도 보이고 있다. 지난 18일에는 2박3일 일정으로 중국 시안의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했다. 21일에는 삼성전자가 평택캠퍼스에 제2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설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코로나19로 경제가 어려운 데다, 이 부회장이 진심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 검찰로서는 이 부회장을 사법처리하는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반면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애초에 삼성 수사는 이 부회장을 겨냥한 수사라고 봐야 한다”며 “검찰이 그동안 수백명을 조사하는 등 삼성을 탈탈 털어 놓고, 수사 결과가 지지부진하면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안효주/이인혁 기자 j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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