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는 천연 조미 소재
천연 조미 소재는 일반 식품 조리 과정에서 마지막에 소량 넣는 일반 조미료보다 더 넓은 개념이다. 햄과 소시지, 라면, 각종 간편식을 포함한 대부분의 가공식품 제조 과정에서 맛을 끌어올리기 위해 쓰는 물질을 통칭한다.
지금까지 조미 소재는 크게 MSG와 핵산이 주도해왔다. 1909년 MSG를 개발한 아지노모토는 이 제품 하나로 글로벌 조미 시장을 111년간 호령해왔다. ‘제5의 맛’ ‘감칠맛’으로 불리며 소량만 넣어도 짠맛은 더 짜게, 단맛은 더 달게 느껴지도록 하는 ‘마법의 가루’로 단숨에 세계 1위에 올랐다. 사탕수수 등에 함유된 글루텐을 가수분해하면서 얻어낸 성분으로 정제와 화학 처리 등의 인위적 공정이 필요하다. 국내에서는 대상의 미원(1955년), CJ제일제당의 미풍(1963년)과 다시다, 맛나 등 다수의 조미료 원료로 쓰고 있다.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회장은 1953년 제일제당을 설립할 때 기술과 사업 모델을 아지노모토에서 배워 왔다.
CJ제일제당은 그동안 아지노모토에 여러 차례 도전했다. 첫 성과는 식품 조미 소재인 ‘핵산’에서 나왔다. 1977년 이 시장에 진출했다. MSG 시장보다 규모는 작지만 5년 전부터 아지노모토를 꺾고 세계 1위를 차지했다. 현재 6000억원대 글로벌 시장에서 53% 이상의 점유율을 갖고 있다. 사실상 독주체제다. CJ제일제당의 매출(CJ대한통운 제외)은 지난해 12조7668억원이었다. 일본 2위 식품회사 아지노모토의 매출(12조6400억원)을 역대 처음으로 넘어섰다.
이번에 출시한 테이스트엔리치는 조미 소재 시장에서 아지노모토를 완전히 따돌릴 게임 체인저를 목표로 개발됐다. CJ제일제당은 “10년간 연구개발(R&D) 끝에 세상에 없던 새로운 천연 조미 소재를 개발했다”며 “초격차 경쟁력으로 글로벌 식품업계 ‘맛의 전쟁’을 이끌 것”이라고 말했다.
CJ, 청출어람 될까
테이스트엔리치는 기존 식품 조미 소재가 ‘화학반응’을 거쳐야 했던 한계를 완전히 벗어났다. 이 제품은 완성된 식품에 ‘첨가물’이라고 표기하지 않아도 된다. 유기농, 프리미엄, 채식주의자용 비건 제품 등에 ‘천연 원료만 썼다’는 의미의 ‘클린 라벨’을 달 수 있다. 그러면서 기존 무첨가물 제품들이 가진 맛의 한계도 뛰어넘는다. 소금을 덜 쓰고도 짠맛을, 설탕을 덜 쓰고도 단맛을 낼 수 있다는 얘기다. 세계 식품 시장이 밀레니얼과 Z세대의 ‘건강한 소비 패턴’을 겨냥하고 있는 만큼 성장 가능성은 매우 높다는 평가가 나온다.
CJ제일제당이 10년간 천연 조미 소재 개발에 나선 이유는 또 있다. 이미 MSG와 핵산 시장에서는 중국 기업들이 바짝 뒤쫓고 있다. 외식과 식품 기업이 대형화하면서 MSG 시장에서는 중국 기업 ‘푸핑’이 아지노모토를 넘어섰다. 핵산 시장에서도 2위는 중국 매화, 3위가 아지노모토다. 성장이 정체된 시장에서 순위 다툼이 치열하다.
한·중·일 3국의 싸움이었던 식품 조미 시장에서 CJ제일제당은 ‘천연 조미 소재’를 개발하면서 이들과 싸우는 링 자체가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금까지 천연 조미 소재 시장에는 ‘효모’를 활용하는 프랑스, 독일 기업들이 있었다. 하지만 알레르기 성분이 검출되고, 음식의 맛을 오히려 떨어뜨린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한 CJ제일제당은 지난해 시제품을 미국과 유럽 등 글로벌 식품회사에 보내 바로 가계약을 맺은 곳도 다수라고 알려졌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천연 조미 소재가 약 7조원의 세계 조미 소재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8%에 불과하지만 매년 6~10% 성장하고 있다”며 “5년 내 글로벌 천연 조미 시장을 2조원으로 키우고, 프리미엄 가공식품 소재 부문에서 초격차 1위를 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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