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세계 최초 5세대(5G) 이동통신 상용화에 성공한 한국이 후속 기술에서는 밀릴 위기에 처했다. 미국과 중국 등이 28기가헤르츠(㎓) 대역 서비스, 5G 단독모드(SA) 상용화 등에 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5G 기술을 선도해 ‘디지털 뉴딜’의 핵심 기반으로 삼겠다는 정부의 전략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28㎓ 대역 5G 서비스 내년 넘어갈 듯
작년 4월 한국과 세계 최초 5G 서비스 경쟁을 벌였던 미국 버라이즌은 초고주파인 28㎓ 대역을 활용해 5G 상용화를 시작했다. AT&T와 T모바일 등 다른 미국 통신사는 저주파와 고주파 대역을 모두 쓰고 있다. 영국 무선통신서비스 시장조사업체 오픈시그널의 조사 결과 버라이즌이 506.1Mbps(초당 메가비트)로 한국 통신사들보다 2배 이상 통신 속도를 낸 것도 이 때문이다.
주파수 대역이 높아질수록 더 많은 대역폭을 쓸 수 있어 전송 속도가 빨라지고 지연 속도는 짧아진다. 3.5㎓ 대역에선 통상 80~100㎒폭을 쓰지만 28㎓ 대역에선 이보다 8~10배 많은 800㎒폭을 쓸 수 있다. 통신 3사가 5G 서비스에 앞서 홍보 문구로 내세웠던 ‘초고속, 초저지연, 초연결’ 특성을 살리기 위해선 초고주파 대역이 필요하다.
국내 통신 3사도 5G 서비스를 위해 정부로부터 3.5㎓ 대역과 28㎓ 대역을 모두 할당받았다. 하지만 현재 5G 서비스는 3.5㎓ 대역만 활용 중이다. 당초 연내 28㎓ 인프라 구축에 나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투자 시기가 늦춰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3사의 공통된 반응이다. 정부와 약속한 올해 필수 설치 물량 정도만 구축할 것으로 보인다.
28㎓ 대역은 기존 3.5㎓ 대역보다 많은 투자비가 든다. 직진성이 강해 도달거리가 짧은 전파 특성 때문에 기지국을 훨씬 더 촘촘하게 깔아야 한다. 미국 버라이즌이 속도에선 압도적 1위를 기록했지만 5G 접속 시간 테스트에선 0.5%로 꼴찌를 차지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루 중 현지 사용자들이 버라이즌의 5G 네트워크에 접속하는 시간이 7.2분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반면 국내 통신사들은 12~15%를 기록했다. 하루에 3~4시간 정도 5G를 쓸 수 있는 셈이다.
국내 통신사들은 서울 강남, 광화문 등 밀집 지역이나 스마트시티·팩토리 등 기업 간 거래(B2B) 영역에 28㎓ 대역을 먼저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28㎓ 대역에 맞는 B2B 비즈니스 모델이 발굴되기 전까지는 서로 상대 회사 움직임을 지켜보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중국, 3분기 중 5G 단독모드 상용화
중국도 정부 차원에서 5G를 국가 기반 산업으로 보고 적극적인 지원에 나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침체된 경제를 살리기 위해 투자를 대폭 늘리고 있다. 5G의 장점을 제대로 살릴 수 있는 SA를 3분기 중 상용화하는 게 목표다.
현재 전 세계에 상용화된 5G 네트워크는 4세대 이동통신(LTE)과 5G망을 연동한 비단독모드(NSA)로 운영되고 있다. 가입자 인증과 기지국 정보 등 접속에 필요한 정보는 LTE망, 유튜브 영상이나 인터넷상 콘텐츠 등의 데이터 전송은 5G망을 이용한다. 5G SA는 데이터와 접속 모두 5G 기술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현재 5G 서비스는 LTE와 비슷한 수준의 데이터 지연시간이 생기지만 SA가 상용화되면 현재의 5분의 1 수준으로 지연시간을 줄일 수 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SA가 상용화되면 대규모 트래픽을 효율적으로 제어하고 빠르게 전송하는 등 ‘진짜 5G’가 시작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차이나유니콤, 차이나텔레콤 등 중국 통신사는 5G SA 장비 공급사를 선정했다. 중국 1위 통신사인 차이나모바일도 3월 장비 공급사 선정을 마쳤다. 이들 통신사는 총 25만 기의 네트워크 장비를 이르면 3분기 중 구축할 계획이다.
반면 국내 통신사들은 올 상반기로 예정됐던 5G SA 상용화를 하반기로 미룬 것으로 알려졌다.
자율주행·스마트팩토리 뒤처질 우려
자율주행차, 스마트팩토리, 원격진료 등 4차 산업혁명 시대 핵심 분야의 활성화를 위해선 5G 서비스가 반드시 필요하다. 핵심은 초고속과 초저지연 기술이다. 자율주행차와 정밀 제조 공정의 경우 5G의 짧은 데이터 지연시간이 필수적이다. 28㎓ 주파수와 5G SA 상용화가 늦어질수록 이 같은 핵심 산업의 경쟁력도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5G 기술을 선도해 수출 기회를 넓히겠다는 전략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중국이 우리보다 앞서 5G SA 상용화에 속도를 내면서 5G 장비 시장에서 중국 기업들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중국 통신사들은 5G SA 장비 공급사를 선정하면서 화웨이, ZTE 등 자국 업체에 대부분의 물량을 몰아줬다. 삼성전자와 노키아 등은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도 못했다.
홍윤정/이승우 기자 yj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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