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산하 '씽크탱크'를 중심으로 '증세'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늘어나면서 사실상 정부가 증세를 위한 사전 작업에 들어가는게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는 일단 "현실적으로 증세는 어렵다"며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부가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대규모 확장 재정을 예고한 만큼 재전건전성 유지를 위해서는 증세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최근 정부가 국세청 세무조사 강화, 가상화폐 과세 착수에 이어 자동차 개별소비세 인하 종료를 검토하는 등 세수 확대 움직임들도 나타나고 있다.
◆전문가들 "증세 논의 내년 본격화될 것"
증세 논의에 불을 붙힌 것은 한국개발연구원(KDI)이다. 정규철 KID 경제전망 실장은 지난 19일 올해 경제전망을 브리핑하면서 "재정지출확대 수요가 있는 만큼 그에 준해 재정수입도 확대해야 하는데 그 방법으로서 중장기적으로 증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당장은 경기가 안 좋기 때문에 어렵겠으나 중장기적으로 생각해보면 복지 수요가 확대되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상당히 빠르게 올라가므로 그런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뒤이어 조세재정연구원이 나섰다. 김유찬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은 26일 재정포럼 5월호 기고에서 "현재와 같은 재난 시기에는 증세를 미루지 말고 적절한 규모로 시행할 필요가 있다"며 "중부담·중복지를 지향하는 국가에서 기업이나 가계가 세금을 적정한 수준에서 부담하면서 경제활동을 수행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또 "증세는 어려운 시기에 국민들이 고통을 분담한다는 의미가 있고 신인도 제고 면에서도 바람직하다"며 현재와 같이 경기 침체기이면서 확장적 재정지출의 글로벌 공조가 이뤄지는 시기에 재정지출 규모와 동일한 규모로, 또는 재정지출 규모보다 적은 규모로 증세하는 경우 모두 긍정적인 경제 활성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도 최근 재정 확대를 감안하면 증세를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미 재정여력이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며 "증세는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정부는 일단 증세를 부인하겠지만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고 내년에도 확장재정을 해야 되는 상황이 온다면 증세 논의가 본격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출 구조조정만으로 막을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며 "증세는 당연한 수순"이라고 했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은 더 과감한 재정 지출을 주문하고 있다. 30조~50조원으로 예상되는 3차 추경 규모까지 합칠경우 올해 예산 규모는 570조원 안팎에 달하고, 재정 적자 규모는 140조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부자 증세론 한계...서민 부담도 불가피
김 연구원장은 "소득상위계층에서 부담한 세금으로 소득 하위계층에 이전지출을 제공하거나 정부투자 등에 사용할 경우 긍정적인 경기부양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며 이른바 '부자 증세'를 방법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민간 전문가들은 보편적 증세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김 교수는 "법인세 등은 이미 실효세율이 상당한 수준까지 올라 더 인상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비교적 반발이 적은 부가가치세 등을 인상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성 교수는 "면세자를 줄이거나 일반세율을 높이는 방식의 보편적 증세로 갈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재정 확대 추세가 장기화될 경우 소득하위자들이나 면세 비율이 높은 직장인들의 부담은 커질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증세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하자 직장인 커뮤니티 등에선 "정부와 지자체가 각종 지원 명분으로 돈을 뿌려놓고 결국 직장인들 호주머니를 터는 것이냐"는 불만도 커지고 있다.
이미 정부의 세수 확대 기조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당장 종합소득세 납세자가 크게 늘었다. 정부는 필요경비 인정비율을 지난해 기타소득의 80%에서 올해 60%로 낮춘데 따른 영향이다. 지난해까지는 기타소득이 1500만원을 넘지 않는 직장인은 경비로 최대 1200만원을 인정받아 종합소득세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올해는 기타소득이 750만원을 넘으면 종합소득을 합산해 신고해야 한다.
정부는 올해 소득세법 개정안에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도 수익에 과세하는 방안을 담기로 했다. 3~6월 승용차 개소세율 70% 인하 조치도 당초 예정대로 내달 종료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산업계에서 계속 연장을 요청하고 있지만 기재부가 난색을 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