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 ‘사회적 거리두기’로 대형마트는 비었지만 온라인 쇼핑은 쉬지 않았다. '언택트(비대면)' 소비 바람이 불면서 너도나도 '로켓배송'과 '샛별배송' 등으로 집 앞으로 물건을 받기 시작했다. 쿠팡과 마켓컬리 등은 주문이 치솟으면서 부족한 인력을 외부에서 확충하기 시작했다. 불경기 속 투잡, 쓰리잡을 마다하지 않는 노동자들이 전자상거래(e커머스) 물류센터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코로나19 집단감염이 터졌다.<hr >
◆ 쿠팡 주문 월 300만건으로 치솟아…초단시간 노동자 몰려
e커머스 물류센터발(發) 집단감염 우려가 일파만파 전염되고 있다. 쿠팡 부천 물류센터 관련 코로나19 확진자가 속출한 데 이어 마켓컬리의 장지 상온1센터 물류센터, 쿠팡 고양 물류센터에서도 확진자가 나왔다.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는 28일 오전 11시 기준 쿠팡 부천 물류센터 관련 확진자가 총 82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유통업계 현장 안팎에서는 물류센터발 집단감염에 대해 우려하던 사태가 빚어졌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언택트 소비로 인해 급증하는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부족한 일손을 충원하면서 방역 지침을 지키기 어려운 상황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쿠팡 부천 물류센터 근무자들 사이에서는 출근 당시 관리감독자들이 마스크 착용과 손 소독 여부를 확인했지만 식당 등에서는 방역 지침이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연초 월 200만 건이던 쿠팡의 주문량은 코로나19 사태로 300만건 안팎으로 치솟았다. 실제 한국통합물류협회에 따르면 지난 2월 택배 물량은 2억4255만개로 전년 동기 대비 31.7% 늘었다. 설 선물로 택배가 급증한 1월(2억4533만개)과 비슷한 수준으로 늘어난 것이다.
이 같이 급증하는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손쉽고 빠른 방법은 비정규직 고용이었다. 부천시에 따르면 집단감염 발원지가 된 쿠팡 부천 물류센터에서 근무하는 직원은 총 3673명이다. 이들 중 정규직 직원은 98명에 불과했고, 계약직이 984명, 일용직이 2591명인 것으로 파악됐다.
쿠팡 부천 물류센터 관련 집단 감염은 1600명이 근무하는 국내 최대 규모 콜센터로까지 번진 상태다. 부천 중동 유베이스 타워 건물 7층 콜센터의 확진자가 쿠팡 부천 물류센터에서 지난 주말인 23∼24일 아르바이트한 것으로 조사됐기 때문이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물류센터는 업무 특성상 마스크 착용하기, 직원 간 거리 두기 등의 예방수칙을 준수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쿠팡 측의 초기 대응은 아쉬운 점이 많다"며 쿠팡 부천 물류센터에 대해 28일부터 2주간 집합금지 행정명령을 내렸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쿠팡 부천 물류센터에서 근무하는 직원 중 97%가 비정규직 노동자"라며 "계약직 노동자는 정규직이 되기 위해 아파도 쉬지 못하고 일용직 노동자는 먹고살기 위해 아파도 쉬지 못한다"고 주장했다.<hr >◆ "폭주하는 주문 속 코로나 관리 감독 소홀" 지적
폭증하는 주문에 대응하기 위해 다수의 단기 아르바이트를 고용한 e커머스 기업들은 코로나 관리 감독에 다소 소홀한 부분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방역당국은 물류센터 내 구내식당, 흡연실, 셔틀버스, 작업장 등을 통해 전파가 이뤄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쿠팡 부천 물류센터 내 구내식당에서는 100여 명의 근로자가 모여 식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칸막이도 첫 환자가 발생한 이후 설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손이 부족한 현장 상황에서 관리가 어려운 단기 아르바이트생이 늘면서 방역 지침을 제대로 지키기 어려웠을 것으로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추정한다.
일각에서는 기업의 초기 대응이 안이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기도는 쿠팡이 확진자 발생 소식을 알고서도 해당 사실을 직원들에게 알리지 않고 업무를 강행했다고 전했다. 쿠팡은 부천 물류센터에서 첫 코로나 확진자가 나온 다음날인 25일에도 오전에 폐쇄를 결정하지 않고, 직원에게 근무를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지사는 "확진자 발생을 인지한 후에도 수백 명의 관련자가 방치돼 위험에 장시간 노출되기도 했고 특히 역학조사에 필요한 배송직원 명단을 제공해 달라고 요청했음에도 장시간 지연돼 특사경이 회의 도중에 갑자기 긴급조사를 위해서 출동하게 하는 상황이 벌어진 점도 매우 안타까운 점"이라고 비판했다.
마켓컬리의 경우 확진자 발생 직후 물류센터를 폐쇄하고 김슬아 컬리 대표가 고객에게 상황을 알렸지만 쿠팡은 지금까지 고객들에게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지적받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컬리 상온1센터 역시 건물 내 방역에 빈틈이 있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비정규직 등에 대해서는 관리에 한계가 있다는 기업의 목소리가 있지만 코로나19로 인한 비상사태 속 경각심이 더 필요했다"며 "일용직 노동자들이 육체노동을 담당하는 만큼 마스크 착용 유지 등에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 보다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 부분이 잘 지켜지지 않았다고 본다"고 말했다. <hr >
◆ "긱 이코노미 성장…노동 방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
유통업계 안팎에서는 이번 사태에 대해 방역 뿐 아니라 포스트 코로나 시대와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임시직 중심 일자리 양산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보기술(IT) 발달로 온라인을 중심으로 유통산업이 바뀐 만큼 향후에도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임시 일자리 수요가 증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최재섭 남서울대 국제유통학과 교수는 "과거 오프라인 기반이던 유통산업의 패러다임이 변화하면서 앞으로 생기는 일자리는 결국 새로운 형태, 혹은 임시직 노동이 될 것"이라며 "노동의 가치는 반영되지 않은 '최저가 경쟁' 속 사회 시스템이 붕괴될 가능성을 염두에 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권오경 인하대 아태물류학부 교수 역시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새로운 영역의 고용 시장이 열리게 된다"며 "‘긱 이코노미(Gig economy·긱 경제)’ 확산 속 플랫폼 노동자들을 어떻게 좋은 고용으로 연결하는 가가 화두가 될 것"이라고 짚었다.
다만 코로나19로 인한 실물경제 충격과 고용 대란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보다 유연한 고용제도 역시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에는 고용과 해고가 자유로운 노동법이 있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유연한 고용에 대해 합리적인 접점을 찾을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다.
강경우 한양대 교통물류학과 교수는 "지금과 같이 고용이 불안정한 특수한 상황에서 고용창출 효과를 낼 수 있는 기업에게는 일시적으로 경직된 고용법을 시행령 조정 등을 통해 한시적이나마 풀어주는 등의 정책이 필요하다"며 "플랫폼 등장으로 인한 고용구조 변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말했다.
오정민 한경닷컴 기자 bloom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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