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 혼다와 함께 일본 ‘빅3’ 자동차 회사로 꼽히는 닛산이 한국 시장 철수를 선언했다. 일본 자동차 브랜드로는 스바루(2012년)와 미쓰비시(2013년)에 이은 세 번째 한국 철수다. 닛산뿐만이 아니다. 한국에 남은 ‘빅2’인 도요타와 혼다 역시 판매량이 반토막 나는 등 극심한 부진을 겪고 있다. 일각에서 일본 차의 한국 엑소더스(대탈출)로 이어질 것이란 분석까지 나온다.
불매운동에 판매 반토막
29일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달까지 일본 차 판매량은 5636대로, 작년 같은 기간(1만5121대)보다 62.7%(9485대) 급감했다. 이 기간 일본 차의 수입차 시장 점유율도 21.5%에서 7.3%로 3분의 1토막 났다.
일본 차는 지난해 7월 한국에 대한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이후 확산된 불매운동에 직격탄을 맞았다. 작년 일본 수입차 판매 대수(3만6661대)는 전년 대비 19%(8592대) 감소했다. 같은 기간 전체 수입차 판매 감소분(1만5925대)의 절반 이상이 일본 차였다. 불매운동 이전까지 월 4000대가량을 판매하던 일본 차들은 8월부터 판매량이 2000대 이하로 절반 이상 줄었다. 수도권의 한 일본 차 딜러사 관계자는 “작년 말 1000만원 할인 등 가격 인하 효과로 판매량이 반짝 증가했지만 올 들어 다시 판매 부진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獨·韓 사이의 샌드위치 신세
수입차업계에선 일본 차가 독일 차와 국산 차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한 것도 판매 부진의 핵심 원인으로 꼽는다. 렉서스(도요타)와 인피니티(닛산)는 5000만~7000만원대 시장을 독일의 메르세데스벤츠와 BMW에 크게 잠식당했다. 2008년 수입차 시장 점유율이 10%(9.8%)에 가깝던 렉서스는 작년엔 5%로 반토막 났다. 인피니티 시장 점유율은 5.2%에서 0.8%로 추락했다. 같은 기간 벤츠는 11.7%에서 31.9%로 시장 점유율이 세 배 가까이 뛰었다. BMW(시장 점유율 13.6%→18.0%)도 완만한 성장세를 이어갔다.
도요타 캠리와 혼다 어코드, 닛산 알티마 등 3000만~4000만원대 시장에선 현대자동차 그랜저와 기아자동차 K7 등 국산 차에 밀리고 있다. 혼다는 2008년 베스트셀링카 어코드를 앞세워 1만2356대를 판매해 수입차 브랜드 판매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시장 점유율 20%로 수입차 5대 중 1대꼴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시장 점유율은 3.5%(8760대)에 불과했다. 반면 그랜저는 지난해 10만3349대를 판매해 3년 연속 10만 대 판매 기록을 세웠다. 여기에 현대차의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도 스포츠 세단 G70와 준대형 세단 G80를 앞세워 일본 차 잠재 수요를 흡수했다. 제네시스는 2015년 11월 독립 브랜드로 출범한 이후 처음으로 지난달 국내에서 첫 1만 대 판매를 달성했다. 한 미국계 수입차 마케팅 담당 임원은 “일본 차는 고급 차에서는 벤츠에 밀리고 중형 세단에선 국산 차에 치이는 어정쩡한 위치가 됐다”고 평가했다.
SUV 주도 흐름에도 뒤처져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한국 및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 일본 차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도 부진의 이유다. 작년 국산 차 시장(상용차 제외)에서 SUV 점유율은 사상 최고치인 44.5%를 기록했다. 승용차 10대 중 4대는 SUV인 셈이다. 랜드로버와 볼보, 지프 등 과거 일본 차에 밀렸던 브랜드들도 SUV를 앞세워 연 1만 대 판매를 달성하는 등 승승장구하고 있다.
하지만 도요타 라브4와 혼다 CR-V, 인피니티 QX50 등 일본 차는 SUV 시장에서 맥을 못 추고 있다. 소형부터 중대형까지 다양한 모델 라인업을 갖춘 유럽·미국 업체들과 달리 일본 차는 SUV 모델이 1~2개에 불과하다. 가솔린과 하이브리드 중심의 엔진 구성도 한국 소비자로부터 외면받고 있다는 평가다.
도요타와 혼다가 ‘닛산의 길’을 뒤따를 가능성은 현재로선 크지 않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도요타는 올 들어 스포츠카 수프라(1월)와 중형 세단 캠리 스포츠 에디션(2월), 하이브리드카 프리우스C(3월) 등 신차를 꾸준히 내놓고 있다. 혼다는 완성차 부진을 모터사이클로 만회하며 매출이 증가하는 추세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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