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프랑스 파리의 UFI(국제전시산업연맹) 홈페이지에 댓글이 떴다. UFI가 올린 한국의 한 박람회 방역 성공 사례를 살펴본 소감이다. 댓글은 상파울루 디자인엑스포를 준비 중인 브라질 회사 계정으로 달렸다. 확진자 46만여 명, 사망자 2만7000여 명이란 대재앙에 갇힌 브라질. 이 나라 전시회업계의 눈에 한국은 축복이자 영감(靈感)의 대상이다. 이 계정은 “터널 끝에 빛이 보인다”고도 썼다.
5월 8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박람회가 재개될 때만 해도 ‘위험한 이기주의’란 말이 나왔다. 같은 시기 재개한 무관중 방식의 프로야구, 축구와 달리 제 이익을 앞세운 밀집형 상업 행사라는 이유에서다. 그 후 나흘간 4만5000여 명이 현장을 다녀갔다.
코로나 뚫은 힘, 배려
한 달여가 지난 지금 ‘우려했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대신 ‘팬데믹(전염병의 대유행)에서도 전시회를 여는 건 하기 나름’이란 메시지를 글로벌 마이스(MICE: 기업회의·포상관광·컨벤션·전시회)업계에 던졌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전시방역 표준으로 ‘K마이스’가 떠오른 것이다. 미국의 한 의학회는 “내년 세계 콘퍼런스 개최지를 한국으로 변경하겠다”며 비상한 관심을 나타냈다. 세계적 전시업체인 영국의 리드익지비션은 이 전시회 방역의 ‘A to Z’를 스캔해 가다시피 했다.
‘신박’한 방역 시스템을 가동한 게 아니다. 가능한 방역 기법을 모두 동원해 감염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더 줄이려 했다. 손 소독-마스크 착용-안면인식 체온 측정-일회용 장갑 착용-수작업 발열 측정을 이어가는 5겹 방역망이다. 외부공기 순환 유입 비율을 기존 30%에서 100%로 확대한 것도 항공기 실내 공기 순환 시스템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화룡점정을 한 것은 관람객의 배려다. 행사장 입장 이후부터 출구로 빠져나올 때까지 마스크와 장갑을 벗지 않았다. 카페테리아 식탁에선 투명 아크릴 격리판을 사이에 두고 ‘안전 대화’를 나눴다. 발열 체크와 소독, 신원 확인을 위해 기다리는 1~2시간을 참아냈다. 5만 명에 가까운 이들이 나흘 내내 행사의 한 부분처럼 움직였다. ‘더 이상의 최선은 없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임창열 킨텍스 대표는 “거대한 도전에서 모두 승자가 됐다”고 했다.
멀리 갈 수 있는 힘, 함께
글로벌 마이스 시장은 전쟁터로 변한 지 오래다. 관광 결합형 고부가 마이스 경쟁이 무엇보다 뜨겁다. 미국 이벤트산업위원회에 따르면 세계 마이스 관광의 경제효과가 2조5300억달러, 고용효과가 2590만 명이다. 대부분 미국과 유럽, 중국, 일본, 싱가포르 등 마이스 강국이 이 과실을 누린다. 그 틈바구니에서 그나마 한국이 주목받는 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의 국제행사를 주최한다는 ‘양적 지위’다. 지방자치단체 사이에 번진 과시형 ‘OO국제회의’ 붐이 ‘세계 최다 국제행사 개최국’이란 타이틀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CES(세계 최대 전자쇼)나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MWC(모바일월드콩그레스)처럼 매머드 행사의 질적 지위와는 거리가 먼 게 현실이다.
한 번의 방역 성공은 포스트 코로나로 가는 한 개의 징검다리일 뿐이다. 이 징검다리가 CES나 MWC를 한국에 유치하는 ‘기적적 반전’으로 직결되는 것도 아니다. 한 번의 방심이 모든 성취를 무너뜨리는 ‘그라운드 제로’의 비극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그럼에도 주목해야 할 건 그 성취의 가치다. 제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방어만큼, 리스크를 헤지하는 공격적 도전도 모두를 안전지대로 전진케 하는 또 다른 힘이라는 걸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leebro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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