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미술 1세대로서 점과 선·면의 절제된 조형 감각으로 고유의 예술세계를 정립한 김환기(1913~1974), 당대 조각가로는 드물게 테라코타 작품을 선보여 주목받았던 근대 조각의 거장 권진규(1922~1973), 근대기 여성 화가 1세대로 전통 채색화부터 서구의 모더니즘 회화까지 자유롭게 넘나들었던 박래현(1926~1976), 최근 수년간 한국 미술 경매에서 작품이 가장 많이 팔린 추상화의 대가 이우환(84).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네 거장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서울 청담동 노아빌딩의 주영갤러리와 호리아트스페이스, 한국미술경영연구소에서 이름을 바꾼 아이프(AIF·Art In Future)가 연합 전시 형식으로 마련한 ‘청유미감(淸遊美感)’전이다.
오는 16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에는 한국 현대미술 블루칩 작가인 김환기와 이우환의 드로잉부터 200호 이상의 대형 작품, 추상과 구상을 넘나든 박래현의 독창성이 돋보이는 대표작과 권진규의 테라코타 등 80여 점이 나왔다. 지하 1층과 1층의 주영갤러리, 3층의 호리아트스페이스, 4층의 아이프와 5층의 프라이빗 존으로 이어지는 전시여서 2층을 빼면 사실상 건물 전체가 갤러리인 셈이다.
전시 제목의 ‘청유’는 ‘아담하고 깨끗하며 속되지 않은 놀이’라는 뜻. 미술이 지닌 가장 기본적인 역할과 매력을 일상에서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만나보자는 뜻을 담았다. 한국적 정서가 담긴 거장들의 대표작을 통해 현대미술은 난해하고 불편하다는 선입견을 깨고 교감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는 설명이다.
주영갤러리에선 김환기 박래현 이우환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작품 9’ ‘작품 14’ ‘작품 21’ ‘금붕어’ 등 박래현의 추상 작품, 이우환의 200~300호 ‘다이얼로그’ 컬러 대작들과 ‘바람과 함께’ ‘동풍’, 김환기 특유의 조형성이 돋보이는 ‘새와 달’ ‘달’ ‘8-X-69 #124’ 등이 시선을 붙잡는다. 특히 김환기와 이우환의 작업 과정을 보여주는 스케치와 드로잉도 소개하고 있어 주목된다. 또 서울 자하문로의 웅갤러리에서도 오는 13일까지 김환기의 친필사인이 있는 대표적인 드로잉 60여 점을 선보이고 있어 거장의 창작 과정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호리아트스페이스엔 이우환의 회화와 수채화, 권진규의 테라코타 인물상 ‘오월의 여왕’ 등이 전시돼 있다. ‘동풍’ ‘바람으로부터’ ‘선으로부터’ 등 이우환의 대표작은 물론 도자기 그림도 만날 수 있다. 특히 파랑과 빨강의 두 색으로 된 이우환의 ‘다이얼로그’는 국내에 몇 점밖에 없는 것으로 알려져 직접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4층의 아이프에는 김환기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소재의 모티브 중 달과 도자기에 관한 드로잉 20여 점을 집중적으로 살필 수 있다. 또 5층 프라이빗 존에는 4인의 초대 작가와 동시대에 활동한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연이어 볼 수 있도록 했다.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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