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질주하던 코로나 진단키트…'3대 악재'에 급제동

입력 2020-06-01 17:18   수정 2020-06-02 01:56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전 세계의 ‘러브콜’을 받았던 한국 진단키트 업체들이 ‘3대 악재’에 주춤하고 있다. 진단키트 생산량 증가로 판매 가격은 내려가고, 주원료인 추출 시약 가격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어서다. 업계에선 예상보다 빨리 매출 정점을 찍고 하락세가 시작될 수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수출액 전달보다 30% 하락

1일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5월 수출입 동향’을 보면 국내 진단키트 업체들의 수출 대금은 1억3128만달러로 전달(2억65만달러)보다 34.5% 줄었다. 수출 금액은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유행한 2월 64만3000달러에서 3월 2410만달러, 4월 2억65만달러로 급증했다가 상승세가 꺾인 것이다. 노승원 맥쿼리투신운용 펀드매니저는 “공포에 휩싸여 일단 진단키트 재고부터 쌓아두던 시기는 끝났다”며 “각국이 허가를 받은 회사 제품만 수입하는 등 장벽이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과잉 공급으로 인한 가격 하락도 본격화하고 있다. 4월 개당 12~14달러를 웃돌았던 진단키트 공급가격은 최근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진단키트 수출 허가를 받은 국내 기업은 84곳이다. 여기에 미국과 유럽 기업을 중심으로 진단키트 생산도 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수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일부 국가는 개당 5달러 안팎을 요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생산 설비를 100% 가동했던 분위기도 바뀌고 있다. 지난달부터 공장가동률이 뚝 떨어졌다. 코젠바이오텍은 지난달 마지막 주에 재고 부담 때문에 생산을 중단했다. 회사 관계자는 “이달은 재고 소진 등 추이를 지켜본 뒤 생산량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업체는 지난달 생산량의 3분의 1밖에 수출하지 못했다.

원재료 가격도 급등세

진단키트 핵심 재료인 시약과 용기(튜브)를 대부분 외부에서 조달하는 것도 불안 요인이다. 유재형 솔젠트 대표는 “시약 공급 가격은 코로나19 이전보다 2~5배 올랐다”며 “외부 의존도가 높은 기업들은 수익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기업들은 주로 분자진단 방식의 코로나19 진단키트를 수출했다. 사람의 가래 등 호흡기 검체를 채취한 뒤 핵산 추출 시약을 섞어 유전자증폭(PCR)을 통해 확진 여부를 판정한다.

이 진단키트엔 다섯 종류의 시약이 용기에 담겨 있다. 이 중 세 개 시약은 생체에서 각종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단백질인 ‘엔자임’이다. 환자로부터 리보핵산(RNA)을 추출해 DNA로 바꾸고 이를 수만 배로 증폭시키고, RNA 정보가 손상되지 않도록 화학 반응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이를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국내 기업은 바이오니아 솔젠트 등 일부 회사에 불과하다.

업계 1위인 씨젠은 추출 시약을 글로벌 기업인 로슈와 국내 기업 등에서 상당량을 조달한다. 당초 주당 400만~500만 개까지 생산량을 늘리려고 했던 이 회사는 지난달 첫째 주엔 200만 개만 생산했다. 시약과 용기 등 재료 조달 등에 어려움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에도 주당 300만개 이하로 생산할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시약을 자체적으로 생산하면 영업이익률이 80%까지 올라가지만 수입하면 50% 이하로 떨어진다”고 말했다.

후진적인 생산 방식도 걸림돌

수작업으로 진단키트를 만드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대다수 진단키트 기업이 공장 내에서 수작업으로 시약을 넣어 판매한다. 시약 용기에 이름표를 붙이는 것도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이러다 보니 생산 과정에서 실수가 적잖이 나온다는 지적이다.

주문량을 제때 처리하지 못해 일부 기업은 중국 등에서 완제품을 들여온 뒤 박스만 바꿔 팔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수주를 해놓고 생산량을 맞추지 못한 기업들이 편법을 쓰고 있다”며 “결국 한국산 제품의 질 저하로 이어져 업계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김우섭/이주현/박상익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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