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낸드 라인에 8兆 투자…'반도체 초격차' 시계 빨라진다

입력 2020-06-01 17:24   수정 2020-10-12 15:43


삼성전자가 8조원을 투자해 경기 평택 공장에 최첨단 낸드플래시 생산라인을 건설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위기 때 더 투자한다’는 삼성의 반도체 투자 원칙에 기초해 ‘초(超)격차 유지’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불확실한 업황에도 대규모 투자

삼성전자는 1일 “평택 2라인에 낸드플래시 생산을 위한 클린룸(미세입자를 제거한 반도체 생산 공간) 공사에 들어갔다”며 “내년 하반기 양산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이곳에선 6세대 V낸드 등 최첨단 제품을 생산할 예정이다.

메모리 반도체는 경기 사이클을 타는 대표 산업이다. 길게는 2~3년 지속되는 하강 국면에서 많은 업체가 투자와 생산량을 줄인다. 팔수록 불어나는 적자를 감당하기 어려워서다. 지난해 6월 ‘감산(減産)’을 전격 선언한 미국 마이크론이 좋은 사례다.

삼성전자의 행보는 경쟁사와 정반대다. 불황에도 과감한 연구개발(R&D)과 공격적인 설비 투자를 단행했다. 손실을 감수하고 제품을 찍어내 경쟁자를 퇴출시키는 ‘치킨게임’도 불사했다. ‘위기일수록 더 투자한다’는 삼성전자 메모리 반도체의 성공 방정식이다. 이번 투자 결정은 과거부터 이어온 투자 원칙을 실행에 옮긴 것으로 평가된다. 웬만한 대기업의 연매출보다 많은 8조원 규모 투자를 하기엔 반도체 업황이 우호적이지 않아서다.

우선 가격 회복세가 더디다. 작년 하반기 바닥을 찍고 올라왔던 낸드플래시 가격은 상승세를 멈췄다. 낸드플래시 5월 고정거래가격(128Gb MLC 기준)은 4.68달러로 두 달 연속 보합을 유지했다. 수요도 답보 상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낸드플래시가 들어가는 스마트폰 생산량이 감소했다.

반도체업계에선 삼성전자의 결정에 대해 ‘미래에 대비한 선제 투자’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삼성전자는 5세대(5G) 이동통신과 언택트(비대면) 라이프스타일 확산으로 낸드플래시 수요가 중장기적으로 늘 것으로 판단했다.

“기술 격차·시장 우위 자신감” 분석

삼성 안팎에선 이번 대규모 투자에 대해 ‘반도체 초격차’를 강조하는 이 부회장의 의지가 녹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부회장은 2015년 평택 반도체 공장 첫삽을 뜨기 전 투자 규모(약 30조원)를 결정할 때도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1일엔 “어려울 때일수록 투자를 멈춰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며 10조원 규모의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투자 계획을 공개했다. 10여 일 만에 총 18조원의 대규모 투자를 연이어 발표하면서 초격차 전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번에 양산 계획을 밝힌 6세대 V낸드는 5세대 제품보다 전력은 15% 이상 덜 들고 데이터 처리 속도는 10% 이상 빠르다. 저전력·고성능 낸드플래시를 통해 운영비를 줄여야 하는 데이터센터 업체로선 ‘최적의 선택’이 될 수 있다.

중국 후발업체들의 추격을 뿌리치겠다는 의지도 담겨 있다. 삼성전자는 1분기 33.3%의 점유율로 2위 업체와 10%포인트 이상 격차를 벌리며 낸드플래시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 정부의 자금 지원을 등에 업은 YMTC(양쯔메모리)가 지난 4월 128단 낸드플래시를 개발했다고 알리며 추격에 나서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내년 하반기 양산을 목표로 대규모 투자를 한 것은 시장 우위에 대한 강한 자신감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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