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호 칼럼] 원격의료와 동네병원, 골목상권

입력 2020-06-01 18:14   수정 2021-04-20 17:20

‘24시간 상담, 1시간 내 배송.’

쿠팡이나 마켓컬리의 광고처럼 보이는 이 서비스는 중국 원격진료업체 핑안(平安)굿닥터가 내놨다. 1000여 명의 자체 의료진과 5000여 명의 외부 의사, 3만여 곳의 약국을 네트워크로 두고 온라인 상담과 의약품 판매, 배달을 원스톱으로 한다. 서비스 가입자 수는 약 2억9000만 명. 지난해 매출은 51억위안(약 8700억원)으로 전년보다 52% 늘었다.

이 업체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한 1분 진료소(AI 의사가 환자 상담), 현대판 화타(한방치료 솔루션), 가정의사(1 대 1 홈케어 시스템) 등의 온라인 서비스도 추진 중이다. 중국이 2014년부터 원격진료를 전면 허용했기 때문에 가능해진 일이다. 중국의 원격의료 시장 규모는 올해 334억위안(약 5조7000억원)에서 2025년 948억위안(약 16조2000억원)으로 커질 전망이다. 2015년 초진 환자의 원격진료도 허용한 일본은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를 계기로 규제를 전면 해제했다. 올해 시장 규모는 2억달러(약 2500억원)로 예상된다.

중국과 일본이 발 빠르게 움직이는 사이 한국은 논쟁만 했다. 강원도 16개 시·군 보건진료소에서 첫 시범사업을 한 때가 20년 전인 2000년이다. 원격진료 허용을 담은 의료법개정안은 18대부터 20대 국회(2010년 4월, 2014년 4월, 2016년 6월)까지 매번 제출됐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잊혀가던 원격진료를 되살려낸 것은 코로나19다. 정부는 2월 24일부터 전화 상담·처방을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이번에도 의사단체를 중심으로 ‘동네병원 다 죽는다’는 아우성이 터져나왔다. 실상은 달랐다. 5월 10일까지 80일간 3853개 기관이 26만2121건의 전화진료를 했는데, 42.3%(11만995건)는 1차 진료기관인 의원급(동네병원)에서 이뤄졌다. 일반 병원급(13%, 3만4133건)을 합하면 55.3%다. 상급병원(3차 진료기관) 이용률은 15.6%, 종합병원(2차 진료기관)은 29%였다.

이 기간 오진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 이번만이 아니다. 2015~2016년 60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150개 기관이 실시한 시범사업에서도 오진은 ‘0건’이었다. ‘동네병원 붕괴’와 ‘오진 사태 우려’가 기우였던 셈이다. 이런데도 의사들이 불안해한다면 오진 가능성이 낮은 환자, 질환부터 단계적으로 허용하면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경증은 의원, 중증은 병원 등으로 의료기관별 ‘비대면 진료항목 칸막이’를 두면 쏠림현상도 막을 수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뉴 노멀이 된 비대면 활동을 의료분야만 피해갈 수는 없다. ‘언택트 헬스케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얘기다. 감염병 환자와 거동이 불편한 사람, 만성질환자, 고령자 등에게 비대면 진료는 요긴하다.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둔 일본이 의료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원격의료를 적극 활용하는 사례는 우리가 배울 만하다.

뛰어난 국내 의료 수준과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의 혁신기술이 결합하면 세계 시장을 선도할 수 있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규제를 피해 일본에 진출한 네이버 자회사 라인의 사례에서 보듯이 스마트 헬스케어 업체들은 활로를 찾아 해외로 떠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원격의료 허용의 운을 뗐던 정부는 의사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발을 슬쩍 빼는 분위기다.

원격의료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대형마트의 입점·영업시간을 규제하지 않으면 골목상권이 붕괴할 것이라는 주장과 비슷하다. 대형마트가 월 2회 문을 닫으면 인근 시장으로 소비자가 몰릴 것으로 기대했지만, 새벽배송 당일배송을 내세운 온라인 쇼핑만 세를 불렸다. 지금은 위기가 들춰낸 ‘불편한 진실’과 마주해야 할 때다. 대형마트 규제 같은 실수를 되풀이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상황은 긴박하다. 잘못된 정책이 낳은 부작용과 후유증은 겪을 만큼 겪었다. 원격의료 활성화는 한국판 뉴딜 정책의 첫 사업으로도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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