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1일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발표를 통해 대대적인 내수 살리기 대책을 내놨지만 실제 소비 진작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무관하게 소비여력이 충분한 고소득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정책이 바뀌거나 코로나19로 인해 소비가 발생하기 어려운 분야에 자금 지원이 집중돼서다.
①고가 외제차 구매자만 수혜
기존 소비 대책 중 가장 큰 효과를 냈던 자동차 개별소비세 70% 인하는 인하 폭이 30%로 축소돼 연말까지 연장됐다. 정부는 기존 대책에 있었던 100만원의 개소세 감면 한도를 풀어 경우에 따라 더 큰 이익을 보는 소비자가 나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기존 대책보다 더 큰 혜택을 보기 위해선 판매가격을 기준으로 7600만원이 넘는 차량을 구매해야한다는 점에서 일반 소비자들이 혜택이 늘어났다고 느끼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동차 판매가격은 공장 출고가에 개소세와 교육세(개소세의 30%), 부가세를 더해 결정된다. 출고가가 8000만원인 차를 사면 6월까지는 개소세 인하 한도액인 100만원과 교육세(개소세의 30%) 30만원, 부가가치세 13만원 등 143만원을 감면받는다. 하지만 7월 이후에는 총 171만6000원을 감면받게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산차에 해당하는 출고가 6700만원 이하의 승용차는 개소세 인하 폭이 축소돼서 지금보다는 세금을 더 내야 한다. 출고가 2857만원인 승용차는 지금은 개소세가 약 43만원인데 다음 달부터는 100만원으로 두 배 이상이 된다. 판매가 기준으론 3000만원 초반대 차량이 이에 해당한다.
국내 브랜드에서는 제네시스 차량과 기아차 K9 구매자 정도가 혜택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G80과 GV80은 풀옵션에 가까워야 적게나마 효과가 있다. 자동차 업계 한 관계자는 "제네시스 차량도 큰 차이는 없는 정도이고 수억원대 고가 수입차가 주로 혜택을 볼 것"이라고 말했다.
수입차협회에 따르면 올해 들어 4월까지 판매가 1억원 이상 승용차가 1만대 이상 팔렸다. 가격대별로 1억∼1억5000만원이 8257대, 1억5000만원 이상이 3345대다. 작년 같은 기간의 5307대와 2296대에 비하면 각각 55.6%와 45.7% 뛰었다. 외제차 구매자에게 더 유리해진 개소세 제도 변화로 외제차 판매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개소세 인하는 이달말까지 지속되고 일몰될 예정이었지만 자동차 소비가 살아나는 등 정책효과가 있다고 판단해 지속하는 것"이라며 "70%에서 30%로 인하 폭이 축소된 게 아니라 0%에서 30%로 인하가 된 것으로 봐야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개소세 인하 폭을 70%로 유지하기 위해선 조세특례제한법을 개정해야하는 상황"이라며 "신속한 추진을 위해 시행령 개정으로 가능한 탄력세율(3.5%)을 적용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② 세액공제 한도 상향 얼마나? 세제실은 과도한 상향 어렵다 난색
신용·체크카드 등 세액공제 한도 상향도 소비 진작을 위한 주요 대책으로 꼽힌다. 현재 소비에 따른 세액공제한도는 총급여액이 7000만원 이하인 경우 연간 300만원, 7000만원∼1억2000만원은 연간 250만원, 1억2000만원 초과는 연간 200만원 등이다. 전통시장 사용분, 대중교통이용분, 도서·공연·박물관·미술관 사용분에 대해서는 각각 연간 100만원의 추가 공제한도가 인정된다.
공제 한도를 모두 채운 소비자들의 경우 세액공제 한도 상향은 일종의 가격 할인으로 받아들여진다. 소비를 더 하면 일정 비율의 금액을 연말에 돌려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대책에서 공제 한도를 얼마나 늘릴지 발표되지 않아 소비자들이 당장 소비를 늘리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한도를 얼마나 늘릴지를 본 후 추가 소비를 결정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예컨대 300만원인 한도가 10% 늘어나면 소비자는 30만원의 추가 공제액을 감안한 소비를 하게된다. 20% 이상 높아지면 60만원 이상의 공제를 감안해 소비를 더욱 늘릴 수 있다.
하지만 세금을 담당하는 기재부 세제실은 공제한도의 과도한 상향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4~7월까지 소득공제율을 80%로 높여준 만큼 많은 사람들이 공제 한도를 채우게 될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한도를 대폭 늘려주면 세수 결손이 심화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같은 점을 폭넓게 고려해 7월 세법개정안에서 세액공제 한도 상향 폭을 정하겠다"고 했다.
앞서 정부는 조세특례제한법을 개정해 따르면 올해 4월부터 7월까지 모든 업종 사용분에 대해 결제 수단과 무관하게 소득공제율을 일률적으로 80%로 높였다. 원래 신용카드는 15%, 현금영수증·체크카드 등은 30%, 전통시장·대중교통 이용분은 40%의 소득공제율이 적용되는데, 3월 사용액에 대해 공제율을 두 배로 늘린 데서 한 발 더 나아가 4~7월에 이를 80%까지 일괄 상향한 것이다.
③코로나19 상황에서 영화관 가라고요?
정부는 1618만명에게 8개 업종에서 쓸 수 있는 1684억원 규모의 소비 쿠폰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숙박·관광·공연·영화·전시·체육·외식·농수산물 등 코로나19 피해가 컸던 8개 업종이 대상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르면 오는 10일부터 쿠폰 지급을 시작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세가 다시 고개를 드는 상황에서 적절치 않은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의 소비쿠폰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대부분 오프라인 매장이나 다중이용시설을 찾아가야하는 경우가 많다.
주말에 신용카드로 외식업체에서 2만원 넘게 5차례 이상 결제를 하는 330만명에게 1만원의 외식 할인쿠폰을 주고, 선착순 600만명에게 최대 1만원까지 할인받을 수 있는 20% 할인쿠폰을 주는 식이다. 공연장(8000원), 영화관(6000원), 박물관(2000원), 미술관(3000원) 등에서도 할인이 적용된다.
공모를 통해 선정된 우수 국내 관광상품을 선결제하면 15만명에게 30% 관광 할인쿠폰을 주기로 했다. 숙박 예약시에는 100만명에게 3만∼4만원을 할인 받을 수 있다. 체력단련장 등 실내 체육시설 이용시에는 3만원을 환급해준다.
정부는 할인쿠폰을 지급해 9000억원의 소비 효과를 낸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소비자들이 높은 할인율에도 불구하고 소비를 꺼리게 되면 효과는 반감될 것이란 지적이다. 다음달 여는 대한민국 동행세일, 여행주간 행사 등도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기대했던 효과를 내지 못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기재부 관계자는 "소비 진작을 위한 최선의 대책은 방역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며 "코로나19 확산 추이에 따라 정책 집행 일정을 조정하거나 내용을 수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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