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작가(77·사진)는 2일 서울 서교동 창비 사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신작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창비)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황 작가는 원고지 2400장이 넘는 분량의 이 소설을 구상하고 집필을 끝내기까지 30년을 쏟아부었다고 했다. 그는 “1960년대 이후 30년 동안 이뤄진 근대화가 개발독재로 이뤄진 탓에 우리 문학계에서 산업노동자들의 삶을 다룬 소설은 조세희의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외엔 없을 정도”라며 “근현대 100여 년에 걸친 삶의 노정을 통해 한국 노동자들의 삶의 뿌리를 드러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제목처럼 소설은 1대인 철도공작창 기술자 이백만, 2대인 철도 기관수 첫째 아들 일철과 3대 이지산, 발전소 공장 굴뚝에서 고공농성을 벌이는 4대 이진오로 이어지는 철도원 가족 이야기가 큰 축을 이룬다. ‘철도’를 소재로 잡은 이유가 있을까. “경공업이나 양말공장과 달리 철도와 강철은 광업을 기반으로 근대 산업사회를 상징하는 중공업입니다. 특히 프랑스에선 산별노조의 맏형일 정도로 서구에선 철도 노조의 힘이 세고요. 철도노동자야말로 근대 산업사회의 중심이 되는 노동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공장이 밀집된 서울 영등포 지역을 중심으로 한 철도원 3대 이야기는 일제강점기 노동운동 및 독립운동을 거쳐 해방 전후와 6·25전쟁, 현재의 노동운동으로 이어진다. 이 거대한 서사를 끌고 가는 건 굴뚝에서 고공농성을 벌이는 증손자 이진오다. ‘이진오는 차츰 지상에서의 시간을 벗어났고, 굴뚝의 일상은 이미 현실이 아니게 됐다’는 문장을 시작으로 소설은 3대의 지난했던 가족사를 톺아본다. “굴뚝은 지상도 아니고 하늘도 아닌 중간지점에 있는 재밌는 공간이에요. 굴뚝에선 일상이 멈춰 있으니 상상력으로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조건을 갖고 있죠. 그렇게 우리 민담의 형식을 빌려 굴뚝에 있는 이진오의 눈으로 증조할아버지부터 아버지까지 4대인 후손들이 들락날락하면서 회상하는 구성을 했어요.”
그는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부담감은 없을까. “별 의미도 관심도 없어요. 외국에선 노벨상 받아봐야 단신으로 석 줄 나오는데 우리는 올림픽에서 메달 따오듯 경쟁적으로 소동을 벌이죠. 현대문학이 서구에서 시작했기 때문인지 경제적으로 성장한 우리도 그걸 따라잡아야 한다는 조급함에서 시작된 문제입니다.”
산수(傘壽·80세)를 바라보는 노 작가의 문학인생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헤밍웨이나 마르케스처럼 절필을 선언하면 대개 일찍 죽더라고요. 글을 쓰지 않는 노년의 시간이 길어지면 막막함에 굉장히 힘들거든요. 작가는 은퇴기간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에요. 기운이 남아 있는 한 죽을 때까지 새로운 정신으로 새로운 작품을 써내야 합니다. 그게 작가가 세상에 가진 책무죠.”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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