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 때 빼간 '비밀 자료' 손해배상 기준 나왔다

입력 2020-06-03 17:46   수정 2020-06-04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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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직할 때 전 직장에서 ‘비밀 자료’를 가지고 나왔다면 해당 자료 제작에 투입된 시간과 인건비를 고려해 손해배상액을 결정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62민사부는 온수난방시스템 업체 A사의 직원 B씨가 경쟁사이자 유명 보일러 업체 C사로 이직하면서 전 직장의 비밀 자료 300여 건을 유출하고, 그중 일부를 이메일 5건으로 공유한 사건에 대해 B씨와 C사가 공동으로 A사에 1억1700만원을 손해배상하라고 선고했다.

B씨는 2014년 회사 생활에 불만이 있어 이직하면서 A사와 계열사의 비밀 자료 파일을 대량 외장하드에 저장해 갖고 나왔다. 이후 그는 경쟁사인 C사에 취업해 이 회사 직원들에게 반출 자료 중 일부를 이메일로 전송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A사는 B씨와 C사에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다만 문제는 B씨의 행위로 어느 정도의 손해가 발생했는지 추정하는 부분에서 발생했다. 비밀 자료는 시중에서 거래되는 시장 가격이 존재하지 않아 손해배상액 기준이 없어서다. 결국 사건의 쟁점은 비밀 자료 가격을 어떻게 책정하느냐, 또 C사가 손해배상에 대한 공동 책임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원고 A사는 자료 한 건을 만드는 데 투입된 인력과 시간, 직원 월급 등을 활용해 손해배상액을 도출했다. 직원들의 전체 근무 시간 중 자료 관련 업무에 투입된 시간을 파악해 월급에서 차지하는 비중만큼 계산한 것이다. 또 B씨가 이직한 C사 직원들과 유출 자료를 공유했다는 점을 들어 C사의 공동 책임도 물었다. 재판부는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여 유출한 비밀 자료 한 건의 배상액을 1000만원으로 일괄 적용하고, B씨와 C사가 함께 1억17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A사를 대리한 법무법인 화우의 임철근 변호사는 “비밀 자료는 피해 가격을 책정하기 어려워 재판부가 재량 산정(재량껏 적정가를 도출하는 것)하거나 조정으로 사건을 마무리짓는 경우가 많다”며 “이번 판례는 피해 입증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법원이 A사에 적절한 손배액을 인정한 의미 있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안효주 기자 j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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