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 회계부정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4일 이재용(52)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 부회장이 지난달 29일 재소환돼 검찰 조사를 받은지 엿새 만이다.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이복현 부장검사)는 이날 오전 삼성 합병 의혹 및 회계 부정과 관련해 이 부회장을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및 시세조종,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와 함께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부회장), 김종중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전략팀장(사장) 등 2명에 대해서도 같은 혐의로 구속영장이 접수됐다. 김 전 사장에 대해서는 위증 혐의까지 추가됐다. 김 전 사장은 재판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은 제일모직의 제안으로 추진됐고 이 부회장의 승계와 무관하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검찰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이 부회장의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를 위해 이뤄졌다고 보고 있다. 합병 당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비율은 '1 대 0.35'로, 제일모직 1주가 삼성물산 주식의 3배에 달했다.
제일모직 주식은 23.2%를 보유했지만 삼성물산의 주식은 하나도 없었던 이 부회장은 두 회사의 합병으로 '통합 삼성물산'의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이 같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 이 부회장의 지분이 높은 제일모직의 가치를 부풀리고, 삼성물산의 주가는 떨어트리는 방식으로 합병 비율을 정당화하려 했다고 보고 검찰은 자본시장법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검찰은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 의혹도 이 부회장 승계와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다.
삼성바이오는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에 대한 미국 합작사 바이오젠의 콜옵션(주식을 미리 정한 가격에 살 수 있는 권리)을 회계에 반영하지 않고 있다가 2015년 합병 이후 1조8000억원의 부채로 잡으면서 회계처리 기준을 변경해 4조5000억원의 장부상 이익을 얻었다.
검찰은 삼성바이오가 콜옵션을 반영하면 자본잠식 상태에 빠지는 데다 제일모직에 불리한 합병 비율이 산정될까 우려해 회계처리 기준을 부당하게 변경했다고 판단했다. 이 부회장은 최근 검찰 조사 과정에서 합병 관련 사실을 보고받거나 지시한 일이 없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지난해 9월부터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삼성물산, KCC, 삼성생명, 삼성자산운용 등을 전방위 압수수색하며 이 부회장의 혐의 입증에 주력해왔다. 또 지난달 27일과 29일 두 차례에 걸쳐 이 부회장을 소환해 17시간이 넘는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다.
최근엔 이영호 삼성물산 대표와 고한승 삼성바이오에피스 대표, 윤용암 전 삼성증권 대표,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가 검찰에 잇따라 출석했다. 삼성물산 김신 전 대표와 최치훈 이사회 의장(사장), 옛 미래전략실 장충기 전 차장(사장) 등도 관련해 조사를 받았다.
이와 별도로 이 부회장 측은 전날 기소의 타당성을 판단해 달라며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신청했다. 수사심의위란 사회 이목이 집중되고 공정성 시비를 낳을 수 있는 사건에 대해 법조계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수사 과정과 결과를 심의·평가하는 제도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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