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문제’가 국제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중국이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을 강행하고, 미국은 ‘홍콩 특별지위’ 폐지로 정면 대응하면서 비롯된 후폭풍이다. 여러 세대에 걸쳐 홍콩이 쌓아온 금융 발전, 중개무역과 국제 교통·물류 거점으로서의 성취를 위협받는 현실에 대한 인류애적 안타까움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내일을 확신할 수 없게 된 ‘자유홍콩 이후’의 국제질서에 대한 각국의 현실적 이해계산도 복잡하게 됐다.
미국은 무역, 외환거래, 기술이전, 비자발급에서 홍콩을 특별대우해왔다. 이런 우대가 사라지고 중국식 감시·감독이 강화되면 홍콩이 ‘1급 국제도시’로 남기 어려울 것은 불문가지다.
홍콩의 장래가 불안해지면서 대체 금융허브 후보지로 도쿄 싱가포르 상하이 등이 거론되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홍콩 대체 국제도시’ 후보에 서울은 없다. 2007년 이후 매년 발표된 국제금융센터지수(GFCI) 평가에서 서울이 33위에 불과할 정도로 국제적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2015년 6위까지 오르기도 했으나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30위권 밖이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동북아 금융허브’를 외쳐왔으면서도 그간 뭘 했는가. 전주 외곽으로 이전된 국민연금공단이 ‘수백조원 자산 운용기관이 축사와 가축분뇨시설 옆으로 이주했다’고 조롱당한 판이니 국제금융 허브는 언감생심 꿈처럼 돼버렸는지 모른다.
수도권까지 2500만 명의 메갈로폴리스인 서울이 ‘지구촌 변방 도시’로, 기껏 한국의 골목대장으로 전락하고 있다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금융의 자유도, 기업 활동을 둘러싼 직간접적 법규와 환경, 교육과 문화 등에서 국제적 흐름과 기준을 맞추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우리끼리의 갈등에 빠져, 외국계 금융사들이 잇달아 서울 점포를 닫고 떠나는 것을 못 본 것은 아닌가. 미래와 세계를 외면하는 우물 안 개구리식 사고로는 금융허브도, 국제 거점도시도 더욱 멀어질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6월 2일자》<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사설 읽기 포인트
중국 통제 강화되면 홍콩 자본·인재 유출
인구 2500만 한국 수도권, 경쟁력 처져
법·관습·의식 국제화로 '홍콩 이후' 노려야
‘홍콩 문제’가 초미의 국제관심사로 부각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세계 각국이 나름의 시각과 이해관계로 이 문제를 보는 데는 크게 봐서 세 가지 관점이 있다.
무엇보다 전면전을 불사할 듯 대치해온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매우 첨예하게 부딪치는 ‘최전선’이 홍콩 문제인 만큼 향후 세계사의 흐름에 큰 변수가 되기 때문이다. 경제 문제를 넘어 외교·안보에도 영향을 미치고, 미·중의 갈등에서 각국은 ‘줄’을 서든, ‘지지나 반대 성명’을 내든 어떤 형태로든 입장을 밝혀야 할 상황이 됐다. 국제거점 도시로서 홍콩이 누대에 걸쳐 쌓아온 국제금융의 지위, 중개무역지로서의 성장, 교통과 물류 중심지로 스스로 발전해온 특별한 성과가 앞으로도 유지될 것인가 하는 보편적 인류애도 작용할 것이다.
또 하나는 주요 국가의 경우 ‘직접 이해관계’가 달린 사안이다. 말하자면 ‘홍콩의 어려움 혹은 고통이 나(우리나라)에게는 득도 될 수 있고 손해도 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남의 고통을 나의 이해타산으로 연관시키는 것이 야박하겠지만 국익이 최대의 관심사인 국제관계에서는 엄연한 현실이다. 영국이 국민투표 끝에 유럽연합(EU)에서 빠져나가겠다고 한 ‘브렉시트’ 결정 때 국제금융 중심지 런던을 대체할 곳으로 파리가 부각됐던 것과 비교할 만한 상황이다. 자금과 인재의 이동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빨리 움직인다.
중국이 제정하겠다는 ‘홍콩 국가보안법’은 한마디로 홍콩에 대한 중국의 통제 강화다. 1997년 중국이 영국으로부터 돌려받으면서 했던 대내외적인 약속, ‘50년간 홍콩의 기존체제 유지 및 자치권 보장’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가 흔들리게 된 것이다. 미국이 홍콩에 대한 특별지위를 철폐하겠다는 것도 이를 문제 삼는 것이다. 미국은 난징조약 이후 150년 만에 홍콩이 반환될 때 ‘자유 홍콩’ ‘독립적 홍콩’을 지지 응원하면서 특혜 법까지 만들었다. 1992년 제정된 홍콩정책법이 그것이다. 중국의 힘이 미치는 지역이 됐지만, ‘일국양제(一國兩制)’ 원칙으로 홍콩을 본토 중국과 달리 우대해왔다. 미국의 이 특혜만 없어져도 뉴욕 런던과 더불어 세계 3대 금융허브로 손꼽혀온 홍콩의 위상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금융만이 아니라 중개무역과 물류, 교통과 관광 요지로서의 초특급 국제도시가 계속되기 어려울 수 있다.
문제는 아시아 지역에서 ‘홍콩 이후’를 노릴 만한 국제도시에 서울은 후보도 못 된다는 현실이다. 한 예로 영국 컨설팅업체 지옌그룹과 카타르파이낸셜센터가 공동 조사해 매년 발표하는 국제금융센터지수(GFCI)를 보면 한국은 도쿄 싱가포르는 물론 상하이보다 한참 뒤처진다. 기업환경(Business Environment), 금융의 발전정도(Financial Sector Development), 인프라스트럭처(Infrastructure), 인적 자본부문(Human Capital), 일반적 평판·일반요소(Reputational & General Factors) 등 5개 분야에 걸쳐 평가되는 지수다. 근래 기업과 금융 부문과 관련된 제반 규제 등으로 국제 자본과 인재를 끌어들이기에는 부족한 서울의 처지를 반성적으로 볼 때 아쉽기만 하다. 국토균형발전이라는 명분 아래 주요 금융 공기업이 지역으로 분산됐고, 한국에서 철수한 다국적 금융회사도 적지 않은 게 최근의 일이다.
홍콩에는 이미 자본 유출과 인재 이탈이 나타나고 있다. 이를 유치하고 서울이 홍콩을 대체하는 수준으로 가야 국내에서 투자와 소비, 고급 일자리가 나온다. 국가 간 경쟁에서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울과 수도권이 메트로폴리스 도쿄나 상하이경제권과 맞서 이기는 게 현실적으로 더 절실하다. 금융허브 등 국제거점 도시가 되면 누릴 수 있는 이익이 커지고 장점도 많아진다. 하지만 구호만 외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우리의 법과 제도, 문화와 관습, 의식까지 바꿔 국제화돼야 가능해진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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