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폭행男 영장 기각…급했던 철도경찰, 절차 따진 법원

입력 2020-06-05 15:14   수정 2020-06-05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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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에서 모르는 여성을 상대로 '묻지마 폭행'을 저지른 피의자의 영장이 지난 4일 기각돼 논란이 일고 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철도경찰이 급했던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과 함께 "증거인멸, 도주 우려가 아닌 '절차상 하자'는 일반적인 영장기각 사유에 해당되진 않는다"는 평가가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김동현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 4일 상해 혐의를 받는 30대 남성 이모씨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뒤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피의자를 긴급체포하는 절차가 위법했다는 이유에서다.

이씨는 지난 5월 26일 서울역 1층에서 모르는 여성의 얼굴을 가격하고 도주한 혐의를 받는다. 이씨는 이 범행 전에도 지하철이나 버스 등에서 다른 사람들과 일부러 어깨를 부딪히고 시비를 건 것으로 알려졌다.

구속영장을 발부하거나 기각하는 기준은 주로 △범죄혐의가 소명됐는지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는지 △도주 우려가 있는지 등으로 정리된다.

영장전담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증거인멸이나 도주 우려 외에도 영장집행 과정에서의 위법성을 이유로 기각할 수는 있다"면서도 "다만 일반적으로 잘 적용하지는 않는 기각사유"라고 말했다. 이어 "영장 판사를 5년정도 하면서 딱 한번 절차하자로 기각한 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긴급체포는 피의자에게 3년 이상의 징역형에 해당하는 혐의가 있어 증거 인멸이나 도주 우려가 있는데도 미리 체포영장을 발부받을 수 없는 긴급한 사정이 있을 때 허용된다. 형법상 사람의 신체를 상해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등에 처하게 되는데 단순 폭행의 양형 기준은 2년 이하의 징역, 500만원 이하의 벌금 등으로 규정돼있다.

또 다른 판사 출신 변호사는 "흉기 폭행이면 몰라도 단순 폭행일 경우 긴급체포가 규정하는 징역형에 못 미친다"며 "수사기관이 피의자의 신원, 주거지 등을 파악하고 있었던 점과 함께 법정형 등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철도특별사법경찰대가 '급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사실 피의자가 특정되기도 하고 주거지도 확인돼서 사전에 체포영장을 발부받고 체포할 수도 있었던 상황"이라며 "철도특사경은 이런 사건을 맡는 경우가 거의 없기도 하거니와 여론의 압박 등으로 급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날 철도경찰은 "(범행 당시) 피의자가 불특정 다수에게 몸을 부딪치는 등 비정상적 행동을 해 제2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신속히 검거할 필요성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철도경찰은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 사유를 검토한 뒤 이씨에 대한 구속영장 재신청 여부를 검찰과 협의하겠다는 입장이다.

한편 법원이 밝힌 기각 사유 중에서 "한 사람의 집은 그의 성채라고 할 것"이라며 "범죄 혐의자라 할지라도 헌법과 법률에 의하지 않고는 주거의 평온을 보호받음에 있어 예외를 둘 수 없다"고 말한 부분은 '과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재경지법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판사가 긴급체포, 절차상 위법 등을 따져 영장을 기각할 수는 있지만 '주거의 평온' 등을 말한 부분은 국민 정서를 고려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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