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한 ‘그리핀(사자와 독수리를 합친 상상의 동물)’은 다시 날아오를 수 있을까. 그리핀은 e스포츠구단 스틸에잇이 보유한 ‘리그 오브 레전드(LOL)’ 프로팀이다. 지난해에만 해도 1억명이 시청하는 롤드컵(LOL 세계 1위팀을 뽑는 대회)에 참가할 정도로 강팀이었지만 지난달엔 리그 승강전에 패해 2부 리그로 떨어질 만큼 위세가 하락했다.
4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그리핀이 1부 리그에 합류하지 못할 경우 스틸에잇의 기업공개(IPO)가 무기한 연기되거나 최악의 경우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그간 스폰서십과 대회참가로 얻은 수입, 중계권료 등을 포기해야하기 때문이다. 스틸에잇에 280억원을 투자한 카카오벤처스 등 벤처캐피털(VC)의 투자금 회수(엑싯) 또한 요원해질 수 있다. 그리핀은 내년부터 프랜차이즈 모델을 도입하는 LCK(LOL 챔피언스 코리아) 1부 리그에 대한 합류 의사를 밝히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1부 리그팀 선정 결과는 6월 중하순께 발표될 예정이다.
스틸에잇은 2014년 프로게이머 출신인 서경종 씨와 홍진호 씨, 프로그래머 이두희 씨가 공동창업한 e스포테인먼트(e스포츠+엔터테인먼트)업체다. 창업 초기엔 ‘콩두컴퍼니’란 이름을 쓰다 2018년 8월 지금의 사명으로 변경했다. 리그오브레전드 외에도 ‘플레이어언노운배틀그라운드(PUBG)’ 등 다른 인기 게임의 프로팀도 운영하고 있다.
스틸에잇이 여러 프로팀을 운영 중임에도 유독 LOL 프로팀 그리핀의 1부 리그 승격여부에 IB업계의 관심이 쏠리는 까닭은 사업실적에 미치는 영향이 가장 커서다. 지난해 스틸에잇은 매출 75억원, 영업손실 27억원, 순손실 39억원을 냈다. 매출 중 절반 가까이가 LOL 프로팀 그리핀에서 나왔다. 마케팅에 쓴 출혈도 컸다. 2018년과 비교해 매출이 8억원(12.6%) 느는 동안 영업손실과 순손실은 각각 16억원, 22억원 증가했다. LOL 프로팀 그리핀을 홍보하기 위한 마케팅 비용이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것이 회사의 설명이다.
VC업계가 주목하는 이유는 또 있다. LCK는 기존 승강제를 폐지하고 내년부터 프랜차이즈 모델을 도입하기로 했다. 리그 참여를 위해 1부 리그팀은 프랜차이즈 비용 100억원을 지불해야하지만 그 대가로 리그에서 발생하는 중계료, 광고료 등의 수입을 나눠받을 수 있게 됐다. 승강제가 사라지는 만큼 2부 리그로 강등되는 변수가 사라져 안정적인 스폰서 수입도 기대할 수 있다.
1부 리그 승격이 절실해진 LOL 프로팀 그리핀이지만 선수단 안팎으로 상황이 좋지 않다. 글로벌 대회인 롤드컵에 출전할 만큼 강팀이었던 그리핀이 지금처럼 몰락한 배경에는 지난해 터진 ‘그리핀 사건’이 있다. 그리핀의 성적을 단기간내 폭발적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 감독이 지난해 롤드컵 기간 직전 급작스레 경질된 것을 시작으로 미성년자 선수에 대한 임대 및 불공정 계약건 등 곪았던 내부 문제들이 줄줄이 터졌다. 이에 대해 LCK는 그리핀에 벌금 1억원을 부과하고 경영진의 전원 사퇴를 요구했다. 그 결과, 창립자 중 한 명이며 당시 대표이사였던 서경종 씨와 일부 경영진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LOL 프로팀 그리핀은 계약 만료, FA 등으로 인한 선수 이탈 문제로도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스틸에잇에 회사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LOL 프로팀 그리핀이 1부 리그에 합류할 가능성은 40% 정도로 본다”라고 말했다.
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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