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이궁 다 뺏길라"…면세점 '하이난發 비상벨'

입력 2020-06-07 17:22   수정 2020-06-08 01:22


국내 면세점들이 벼랑 끝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중국이 국가면세지구인 하이난의 내국인 면세 한도를 대폭 높이겠다고 최근 예고했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소비자 발길이 뚝 끊긴 와중에 ‘큰손’ 중국인 보따리상(따이궁)마저 빼앗길 상황에 처했다.

당장 면세점 임차료조차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악재가 겹치자 올여름 이후 생존이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한 면세점 관계자는 “회사 내부에 8월이 지나면 회사가 생존의 기로에 설 것이라는 불안감이 팽배해 있다”고 말했다.

하이난 1인당 면세 한도 3배↑

중국 정부는 지난 1일 ‘하이난 자유무역항 건설 총체 방안’을 발표했다. 여기엔 하이난을 방문한 내국인 1인당 면세품 구매 한도를 연간 3만위안(약 511만원)에서 10만위안(약 1705만원)으로 세 배 이상으로 늘린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하이난은 중국이 2011년 국가면세지구로 지정해 이곳을 방문한 내국인도 면세품을 살 수 있다.

중국 정부는 자국 면세산업을 키우기 위해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다. 하이난의 면세 한도도 초기 5000위안에서 꾸준히 늘려왔다. 한국 일본 등으로 향하는 따이궁들이 중국 내에서 지갑을 열게 하는 게 목적이다. 지난달부터는 59개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비자 없이 하이난을 여행할 수 있도록 했다. 3월 이후부터는 하이난을 찾았던 중국인 방문객이 방문 후 180일 동안 온라인으로 면세품을 살 수 있도록 했다.

이런 각종 대책에 힘입어 올해 2~3월 하이난 면세점 네 곳의 매출은 코로나19 사태 이전의 80% 수준으로 회복됐다. 한 대기업 계열 면세점 고위 관계자는 “따이궁들은 한국에 들어오고 중국으로 나갈 때 총 4주간 자가격리되고 이 기간 비용도 부담해야 한다”며 “양국 이동이 어려운 상황에서 중국 면세점 실적이 회복됐다는 건 한국에 오지 못한 따이궁을 일부 흡수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8월 후 생존이 더 걱정”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지난 4월 국내 면세점 매출은 9867억원으로 전년 동기(1조9947억원) 대비 48.5% 감소했다. 1조원 밑으로 떨어진 것은 2017년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사태 후 처음이다.

따이궁마저 빼앗기면 국내 면세점사업이 위기에 빠질 것이란 우려가 크다. 따이궁은 지난해 국내 면세점 매출의 70%를 차지하는 큰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롯데 신라 신세계 등 대기업 계열 면세점들도 뾰족한 수를 내지 못하고 있다. 공항 임차료 문제 등 당장 닥친 문제들을 해결하기에도 급급한 상황이다.

최근 정부는 인천공항 등에 입점한 면세점의 임대료 인하율을 대기업 계열은 기존 20%에서 50%로, 중소 면세점은 50%에서 70%로 높여줬다. 공항 이용 여객이 지난해의 60% 수준으로 회복될 때까지 최대 6개월(3~8월)간 적용한다. 국내 면세점 관계자는 “공항 임차료 등 눈앞에 닥친 문제 때문에 중국 면세점 대응책은 생각할 여유조차 없다”며 “이렇게 가다간 국내 면세점사업이 중국에 추월당하는 건 시간문제”라고 털어놨다.

또 다른 대기업 면세점 관계자는 “한국 면세점들은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도 따이궁들에게 최대한의 혜택을 줬다”며 “따이궁들을 끌어들일 추가 대책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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