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극히 대비되는 장면의 연속이다. 3차 추경으로 국가채무가 111조원 넘게 불어나는데도 기획재정부는 그 규모가 99조4000억원이라고 우겼다. 작년도 국가채무 결산치가 나와 있음에도 나랏빚 증가 수치를 100조원 안쪽에서 막아보려고 이전 전망치를 기준으로 삼았다는 관측이 많다.
건전 재정, 관료 의지 달렸다
일자리위원회는 통계청 고용 통계(개인 기준)와 고용부 임금 통계(5인 이상 사업장 기준)를 혼용해 ‘짜깁기’ 논란을 빚기도 했다. 소득주도성장의 명분을 위해 ‘통계 분식’이 우려될 만한 통계 산출을 하고 있다는 의혹이 커져온 때여서 타 부처 공무원들도 전염됐나 싶을 정도로 뒷맛이 개운치 않다.
더불어시민당 공동대표를 맡았던 한 교수가 꺼내든 ‘좋은 채무론’ 논리가 정부 고위 관료들 입에서 오르내리는 모습도 아주 닮았다. 적자국채를 발행하더라도 국내총생산(GDP) 증대에 크게 기여하면 국가채무비율을 오히려 낮출 수도 있다는 게 ‘좋은 채무론’의 핵심 주장이다. 하지만 GDP 증대 효과(승수효과)가 기대만큼 크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견해다. 이를 애써 모른 척하며 경제관료들까지 나서 맞장구치고 있는 것이다.
백번 양보해 적자국채를 ‘좋은 채무’로 활용할 수 있다고 해도 그 가능성은 전적으로 운용하는 ‘사람’에 달렸다. 흔히 하는 얘기로 나라 곳간을 건전하게 지키려는 관료들의 의지와 선의만이 적자국채의 긍정적 효과를 담보할 수 있다. 이렇듯 ‘좋은 채무론’을 굳이 강조하려면 ‘좋은 관료론’으로 뒷받침해야 하는데, 현실에선 그런 관료의 모습을 찾으려야 찾을 수 없다.
원전설비회사인 두산중공업을 풍력발전회사로 탈바꿈시키려는 채권단의 모습에서는 당·청의 그림자만 보인다. 국내 기업들에 큰 타격을 주지 못한 일본의 대한(對韓) 수출규제에 대해 다시 문제제기를 해 ‘항일투사냐’는 비아냥을 듣고, 국제노동기구(ILO) ‘권고사항’을 받아들여 전교조를 합법화하려는 법 개정에 안달을 내는 이가 우리 관료들이다.
여당·청와대 깃발만 나부껴서야
여당과 청와대가 이른바 ‘개혁’을 위해 정책을 주도하는 측면은 있지만, 방향이 잘못 잡히면 분명 전문관료들의 제동이 필요하다. ‘영혼 없는 공무원’이란 자조에 익숙해진 탓인지, 이제는 그런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외려 부총리가 긴급재난지원금 전 국민 지급을 ‘반대’했다는 기록을 남겨달라고 하고, ‘유연한 재정준칙’이라는 형용모순적 어법을 아무렇지 않게 쓰고 있다. 지나친 재정확대가 국가채무비율을 2028년 80%까지 높일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마당에 기댈 건 ‘좋은 경제관료들’밖에 없는데, 어디서 이들을 소환해낼지 막막하다.
중국 명(明)나라 관료들의 삶을 조명한 《관료로 산다는 것》(판수즈 저)에는 이들의 진퇴양난이 소개됐다. ‘강직하게 살면 당대 권세의 핍박을 받고, 뜻을 굽혀 아첨하면 후세(사가들)에 멸시당한다’는 것이다. 오늘날도 똑같다. 비록 권력은 강직한 자를 포용하지 않겠지만 역사에선 높이 기억될 수 있다. ‘좋은 관료’가 살아있음을 목격하게 되면 희망을 얘기하는 사람도 늘어날 것이다.
daniel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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