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에 넘치는 돈…지갑 못 열고 증시 달궜다

입력 2020-06-10 17:18   수정 2020-06-11 01:47

현금과 예·적금, 단기수익증권 등을 합친 시중 통화량이 사상 처음 3000조원을 돌파했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내린 데다 기업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대비해 대규모 자금조달에 나선 결과다. 3000조원을 웃도는 유동성이 주식을 비롯한 자산시장을 달구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지난달 기업대출 16兆 늘어

한국은행이 10일 발표한 ‘4월 중 통화 및 유동성’ 자료를 보면 통화량(M2 말기 잔액 기준)은 4월 말 기준 3011조4312억원이었다.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직전인 지난해 말에 비해 3.4%(97조8216억원) 늘었다. 1~4월 증가율 기준으로 2010년(3.4%) 이후 10년 만의 최고치다. 작년 4월 대비 통화량 증가율은 9.1%였다. 2015년 6월(9.6%) 후 가장 높았다.

M2는 현금과 요구불예금, 만기 2년 미만의 정기 예·적금, 만기 2년 미만의 금융채, 머니마켓펀드(MMF) 등을 포함한 넓은 의미의 통화지표다. 경제주체들이 유동성을 얼마만큼 쥐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대표 지표로 꼽힌다.

보유 주체별로는 가계가 보유한 통화량이 1545조8225억원, 기업 보유 통화량이 834조6724억원이었다. 지난해 말에 비해 각각 3.1%(46조1066억원), 3.8%(30조8769억원) 늘었다.

통화량 가운데 현금과 언제든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요구불예금·수시입출금식 저축성예금·MMF·종합자산관리계좌(CMA) 등 단기금융상품을 합친 단기자금의 잔액은 1118조8988억원으로 지난해 말에 비해 7%(73조9240억원) 늘었다.

기업대출이 급증한 만큼 통화량은 앞으로도 빠르게 불어날 가능성이 높다. 지난달 말 은행권 기업대출 잔액은 945조1000억원으로 전달에 비해 16조원 늘었다. 관련 통계를 작성한 2009년 6월 이후 올해 4월(27조9000억원)과 3월(18조7000억원)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증가폭이다. 은행권 기업대출은 3~5월에만 62조6000억원 늘었다.

풀린 유동성, 증시로 흘러갔나

통화량이 올 들어 급증한 것은 한은이 올초 연 1.25%였던 기준금리를 두 차례 인하해 사상 최저인 연 0.5%까지 끌어내린 영향이 컸다. 하지만 넘치는 유동성은 아직 소비 확대 등으로 연결되진 않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에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가계·기업 심리가 급격하게 얼어붙은 탓이다. 한은은 올해 상반기 민간소비가 전년 동기 대비 3.4% 감소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제조업 업황 기업경기실사지수(BSI)도 지난달 49를 기록해 2009년 2월(43) 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풀린 유동성은 주식을 비롯한 자산시장으로 흘러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올 들어 지난 9일까지 유가증권시장의 하루평균 거래액은 9조874억원으로 연간 기준 역대 최대였던 2011년 거래액(6조8631억원)을 크게 웃돌았다. 코스피지수는 이날 2195.66에 마감했다. 지난 3월 19일 기록한 연중 최저점(1457.64) 대비 50.6% 뛰었다.

이날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고 시중에 풀린 유동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김 차관은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나타난 저금리 기조하에서 시중에 풀린 풍부한 유동성이 부동산 등 자산가격의 과도한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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