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177석 거대 여당의 독주를 걱정하는 목소리를 외면한 과잉입법이자 과속입법이 아닐 수 없다. 정부는 4차 산업혁명과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글로벌 경쟁력을 끌어올리려면 ‘공정경제 입법’이 시급하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 와중에 무리한 기업 옥죄기 입법이라는 지적이 불가피하다.
‘한국식 예외주의’라는 미명아래 첩첩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경쟁촉진이 목표인 공정거래법의 취지와 상충된다. ‘거래의 안전보호’와 ‘기업의 유지강화’가 목적인 상법 역시 사법(私法)의 속성을 지녀야 한다. 그런데도 개정안은 규제법으로 치닫고 있다. 위헌 소지는 물론이고 세계의 보편적 규칙에도 어긋난다는 비판이 불가피하다.
한국 기업들은 ‘글로벌’로 내달리고 있는 데 비해 개정안은 ‘로컬’의 한계를 분명히 보여준다. 사익편취(일감 몰아주기) 규제에서 특수관계인과의 거래를 증여로 의제해 과세하는 것은 한국에만 있는 방식이다. 상법 개정안 역시 선진국에서 입법례를 찾기 힘든 과잉규제로 점철돼 있다. 다중대표소송이나 감사위원 선임·해임 시 의결권 제한 등은 시장경제의 초석인 재산권·주주권을 침해하는 과잉처방이다.
또한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는 시민단체 등 외부세력에 의한 고발 남발을 부르고 기업 흔들기에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 ‘죄가 없으면 고발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업의 한정된 시간과 재원을 본연의 업무가 아닌 송사에 쏟아부어야 한다면 국가적으로도 득이 될 게 없다. ‘정의기억연대 사태’에서 보듯 시민단체의 도덕성이 결코 기업보다 우위에 있지 않다는 점에서 경제의 정치종속을 심화시킬 우려도 만만찮다.
공정경제를 앞세웠지만 실제로는 대기업이 아니라 중소·중견기업에 더 치명적이라는 점도 고려돼야 한다. 전속고발제만 해도 공정위에 신고가 접수된 사례를 분류해 보면 중견·중소기업 비중이 해마다 80%를 웃돈다. 상법 개정안의 주요 규제대상인 상장사의 86%는 중소·중견기업이다. 상장사협의회, 코스닥협회, 중견기업연합회 등이 상법 개정안을 한목소리로 우려하는 이유다.
상법과 공정거래법의 취지를 부인하는 게 아니다. 나무랄 데 없다. 하지만 일부의 문제를 조급하게 일반화해 갈라파고스 규제를 자꾸 더한다면 코로나 충격으로 생사기로에 선 기업을 벼랑끝으로 내모는 소탐대실이다. 충분한 공감 없이 입법 과속페달을 밟는 것은 공정이 아니라 공멸을 부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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