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도의회는 “국가 균형발전에 역행하는, 기업 유턴을 위한 수도권 규제 완화를 즉각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양승조 충남도지사는 “유턴 기업을 위한 수도권 지원은 국가 균형발전의 역행”이라고 규정했다. 이에 앞서 부산 지역 시민단체들은 수도권 유턴기업 지원을 철회하라는 성명을 냈다.
범여권만이 아니다.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한 미래통합당 의원들도 유턴 기업을 위한 수도권 지원에 일제히 반대하고 나섰다. 지금 비(非)수도권 야당의원들은 경쟁적으로 유턴기업 지원 법률 개정안을 이미 냈거나 예고하고 있다. 핵심은 유턴기업의 행선지는 수도권이 아닌 지방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의 입장은 어떠할까. 정치권의 논쟁은 정부가 발표한 ‘하반기 경제정책 운영방향’에 담긴 유턴기업 지원 확대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이 내용은 정치권이 논쟁을 벌일 만한 사안도 못된다. 유턴기업 지원을 위한 종합 패키지 중 수도권과 관련된 것은 딱 두가지다. 유턴기업이 수도권을 원할 경우 공장총량 범위 내에서 우선 배정하겠다는 것과 수도권 유턴기업에 대해서도 보조금을, 그것도 첨단산업인 경우에 한해 주겠다는 것이다.
수도권 규제완화라고 말할 수준도 안 되는 지원을 놓고 정치권에서 무슨 큰 일이라도 난듯이 갑론을박을 한다는 것 자체가 놀랄 일이다. 기업은 여전히 국내로 들어올 맘이 없다. 들어와서 살아남는다는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한국은 ‘유턴기업의 무덤’이라는 말까지 나오겠는가.
◇ 정부도 정치권도 기업을 너무 모른다
정치권도 정부도 착각을 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국내로 돌아올 기업들이 줄을 선 줄 알고 있지만, 그것부터 틀린 가정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이 코로나 방역 성공으로 가장 안전한 곳”이라며 “첨단산업의 제조공장이 되겠다”고 했지만, 안전은 비용, 시장, 세금, 기술, 인력, 에너지, 규제 등과 함께 기업이 입지를 결정할 때 고려하는 수많은 요인 중 하나일 뿐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국내 비(非)금융업 매출액 상위 1000곳을 상대로 실시한 글로벌 공급망 변화에 대한 인식 조사만 봐도 그렇다. 향후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있을 것이라는 응답은 50% 가까이 됐지만,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해외 생산기반의 국내 이전을 고려한다는 답변은 3%에 불과했다. 공급망의 지역적 다변화(21.2%), 협력사 관리 강화(20.2%), 내부 공급망 역량 강화(13.1%) 등이 대부분이었다.
지난달 29일 각 업종별 협회가 제3차 산업발전포럼에서 발표한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의 비전과 과제’에서도 이런 현실은 그대로 드러났다. 전자, 조선해양, 반도체, 디스플레이, 바이오, 철강, 자동차, 석유화학 등에서 글로벌 공급망 재편 대응 필요성은 제기됐지만 국내 유턴 얘기는 나오지도 않았다.
자동차의 경우 동남아 국가 등에 투자하여 멀티소싱을 하거나 소비지 내 생산 비중을 확대해 리스크를 분산하고, 현지화 생산비율을 늘리는 방식으로 기존 공급망을 보완·대체한다는 전략이다. 전자 쪽은 국내외 생산처와 부품 공급선을 다변화하고 안정화를 모색한다는 입장이다.
반도체 협회는 코로나로 일부 장비 도입이 우려되고 있지만 당초 계획된 신규·증설 설비투자는 차질없이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원료 등 원가 경쟁력 확보(upstream), 현지 수요시장 대응(downstream) 등 글로벌 공급망 형성이 타 산업과 다른 석유화학 쪽은 오히려 유턴시 생산시설 고정비용 회수 리스크를 우려했다. 국내외 생산시설 간 가동률 조절로 시장 환경 변화에 대응한다는 전략이다.
한국 주력산업의 대부분은 글로벌 단위 경쟁을 전제로 출발했다. 규모의 경제와 기술의 고도화, 공급망 다변화 등을 특징으로 하는 글로벌 경쟁산업은 오히려 국내에서 반기업정서 등으로 기업의 발목만 잡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 유턴 희망 기업이 원하는 건 경쟁력
물론 유턴을 희망하는 업종도 있다. 그러나 유턴을 고려하는 기업의 니즈는 정치권이 생각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여기서 정치권의 두 번째 착각이 드러난다.
기계산업이 좋은 사례다. 중국 의존도 축소, 소재·부품·장비 국내 개발, 공급선 다변화를 필수라고 생각하는 기계 쪽은 국내 공급망 구축과 제조업 밸류체인 차원에서 유턴기업 지원 강화를 요구했다. 최저임금 상승,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산규 채용이 어려워진 만큼 유턴기업 지원시 고용인원 기준을 내려달라는 것과, 주52시간제 적용 1년 이상 유예와 특별연장근로 인가요건 완화로 유턴기업의 국내 정착을 도와줄 것을 주문했다.
섬유패션 쪽은 훨씬 더 직접적인 희망사항을 내놨다. 인건비는 물론이고 입지 분양가, 지가, 임대료, 설비투자 지원 등이었다. 한마디로 비용을 줄여달라는 얘기다.
유턴 지원을 위한 법률과 시행령이 ‘베스트 프랙티스’인 것도 아니다. 미국의 경우 유턴 희망 기업과 정부의 협상으로 지원 범위 및 규모가 결정되는 등 기업 맞춤형 지원 프로그램이 가능하다는 주장도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정치권이 이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지 의문이다.
◇ 산업부는 유턴기업 심층 수요조사부터 해 보라
“경영 악화가 아닐까요.”
유턴기업이 국내 복귀 후 얼마 안 돼 폐업한 이유가 뭔지에 대해 산업통상자원부가 이렇게 답했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각국의 유턴정책이 한국에 이득이 되는지 손해가 되는지, 한국은 이런 상황에서 똑 같이 유턴전략으로 가야 하는지, 아니면 발상의 전환을 해 미국 중국 유럽연합(EU) 등 거대 경제권의 공급망 안으로 오히려 치고 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답변까지 바라지는 않는다. 최소한 유턴정책을 내놓으려면 우리 기업에 대한 데이터 파악은 돼 있어야 정상이다. 기업이 왜 밖으로 나갔는지, 대기업과 동반한 것인지 독자적인 것인지, 해외시장 개척 등 전략적 경영을 위해 나간 것인지 반(反)시장·기업적 환경 때문에 나간 것인지, 국내로 들어오려는 기업은 얼마나 되는지, 유턴을 하고 싶은데 망설이고 있다면 이유는 무엇인지, 국내로 들어오면 어느 지역을 선호하는지 등에 대한 기초적인 데이터가 하나도 없다. 정책이 겉도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유턴 기업이 많다는 미국에서는 정치인의 평가와 기업인의 평가에 큰 차이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치인은 언제나 과장하기 마련이라는 얘기다. 제조업이 눈부시게 진화를 하고 있는데 유턴정책은 과거의 제조업에 갇혀있다는 비판도 있다. 차라리 이런 논의는 생산적이다. 정작 기업은 유턴할 마음도 없는데 정확한 실태 파악도 하지 않은 채 정치권이 유턴을 놓고 수도권·비수도권으로 갈라져 균형발전 논란을 벌이고 있다는 게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a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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