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인생 33년 차 관록의 배우 정진영이 '사라진 시간'을 통해 메가폰을 잡은 소감을 밝혔다.
11일 서울 종로구 모처에서 만난 정진영 감독은 영화 연출을 결심하게 된 이유에 대해 "예순이 코앞이다. 4년 전 우리 애가 고3이었다. 지금은 17학번으로 성인이 다 됐다. 그동안 가장으로 살아가는 것이 첫 의무였는데 아이가 성인이 되니 나를 뒤돌아 보게 됐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순탄하게 작품을 해오며 나는 원래 뭐 하고 싶었던 사람인가라는 생각을 했다. 저는 예술가로서 살고 싶었다. 대단한 것이 아니라 안주하고 도전하는 삶 말이다"라고 털어놨다.
정진영은 1988년 연극 '대결'로 데뷔한 후 연극, 영화, 드라마, 시사교양 등 다방면으로 활발히 활동해왔다. '감독'은 정진영의 오랜 꿈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부터 동경했던 꿈을 2020년 '사라진 시간'을 통해 펼치게 됐다.
정 감독은 "배우도 예술가이지만 안전한 시스템 안에서 들어와 있는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다른 작업을 해보고 싶어 홍상수, 장률 감독의 영화에 참여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 독립영화에 출연하려 했다가 제작비 때문에 엎어지더라. 화도 나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했다. 그때 저는 시간이 비었고 독립영화를 만들어 보자 하고 시작을 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큰 영화는 감당을 못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책임질 영화를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그렇게 개봉까지 왔다"고 말했다.
영화 개봉은 생각지도 못한 부담으로 다가왔다. 글을 쓰고 작품을 만들 때는 힘들었지만 재밌다는 기분이 더 크게 들었다고 정 감독은 설명했다.
그는 "배우들은 연기와 캐릭터로 평가받지만, 감독은 다 발가벗겨지는 기분이다. 이제 영화는 제 것이 아니다. 해석은 관객들의 몫이다"라고 덧붙였다.
‘사라진 시간’은 의문의 화재사건을 수사하던 형사 ‘형구’(조진웅)가 자신이 믿었던 모든 것이 사라지는 충격적인 상황과 마주하면서 시작된다.
하루 아침에 한 남자의 삶이 송두리째 뒤바뀌는 신선한 설정과 과연 가 이전의 삶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인지 결말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기묘한 스토리는 색다른 재미다.
정진영 감독은 이번 영화를 통해 타인이 규정한 삶과 자신이 바라보는 삶, 부조리한 간극 속에 놓인 인간의 고독과 외로움을 통해 관객에게 깊은 위로를 전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는 기존 상업영화의 문법을 과감히 탈피하는 패기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화 '사라진 시간'은 오는 18일 개봉된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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