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플로이드 시위 사태가 남긴 것들

입력 2020-06-11 15:19   수정 2021-07-21 15:25


할 말이 참 많다. 2020년 새해 전야 때만 해도 올해 미국 대통령 선거가 모든 이슈의 중심이 될 줄 알았다. 몇 달도 지나지 않아 세계적으로 유행병이 퍼지고, 경제적인 재앙이 발생하고, 수많은 시위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기는 어려웠다. 인생이 놀라움의 연속이라거나 역사는 늘 급반전하기 마련이란 뜻이 아니다. 예기치 못한 엄청난 고통을 겪게 됐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경제와 문화 지표들이 줄줄이 하락했다. 세상은 더 어둡고 약탈적으로 변했다. 앞으로 더 많이 겪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나중에 손주들에게 ‘2020년의 봄’에 대해 설명해줄 것으로 여기겠지만 그게 아니다. 앞으로 10년간 우리가 정상화하려고 노력한 일들을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시위와 폭동을 놓고 사람들이 이토록 짧은 기간에 전부 동의하게 됐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아이러니다. 우리는 (백인 경찰의 가혹 행위로 사망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의) 9분짜리 영상을 지켜봤다. 죽어가는 사람이 자비를 구걸하는데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경찰의 만행을 되새겼다.

과거에도 비슷한 사건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이번은 다르다. 대부분이 문제를 인정하고 있어서다. 미국에서 흑인들은 안전하다고 느끼기 어렵다. 걷거나 운전할 때도 마찬가지다. 경찰은 사우스캐롤라이나 출신의 흑인 상원의원 팀 스콧을 수차례 의원 사칭 혐의로 제지했다. 수년 전 인터뷰에서 스콧 의원은 “상원의원 첫 6년간 잘못된 (백인들) 동네에서 새 차를 운전한다는 이유로 7차례나 불심 검문을 당했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플로이드 사건에 대한 항의와 시위를 완전히 이해하고 있다. 분노와 고통의 표현 방식도 수용한다. 다만 받아들이기 힘든 것은 약탈과 폭력, 방화다. 문을 닫아건 주인들이 가게에서 쫓겨나고 구타당하는 모습까지 수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 이상의 폭력은 안 된다.

이제 경찰을 미워해야 하나. 그렇지 않다. 나쁜 경찰을 멀리하되 좋은 경찰은 도와줘야 한다. 좋은 경찰은 훌륭한 의사나 간호사만큼 사회를 돕고 있다. 사선(射線)에 서 있는 직업군이다.

뉴욕에선 뺑소니 운전자가 경찰을 살해했다. 다른 경찰은 목을 찔렸고, 두 명은 총상을 입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한 명, 또 세인트루이스에서 네 명이 총격을 받았다. 누군가 경찰 대오를 향해 무작위로 총질을 했다는 게 경찰서장의 얘기다. 세인트루이스에선 또 38년간 근무한 뒤 퇴직한 흑인 경관 데이비드 돈이 시위대의 약탈 도중 총에 맞아 숨졌다.

경찰은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목도하는 사람들이다. 새벽 3시20분에 911로 걸려온 전화를 받고 출동한 뒤 끔찍한 일을 지켜봐야 한다. 누구에게 말할 수도 없다. 사건이 알려지면 모방 범죄가 발생할 수 있어서다. 폭력적인 부모를 접촉하고, 필로폰의 해악을 목격한다. 제대로 훈련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모든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 경찰 노조 외엔 아무도 뒤를 봐주지 않는다. 더구나 이 노조는 좋은 경찰이 승승장구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아니라 나쁜 경찰을 뿌리 뽑는 것을 방해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전문 의료인 사이에선 ‘도덕적 상처’라는 말이 회자된다. 한계 상황에 처한 많은 의료 종사자들은 도덕적 상처를 입고 있다. 경찰도 마찬가지다. 흑인들도 그렇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도덕적 안정과 지적 균형을 유지하는 일이다. 공정함을 되찾고 상황을 개선하는 방법이다. 최근 상황을 보면 일부 경찰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시위대를 불필요할 정도로 거칠게 다뤘으며 기자들을 공격했다.

다행히 성공적으로 업무를 수행한 경찰도 있었다. 시위대와 얼굴을 맞댄 채 대화하고 무릎을 꿇기도 했다. 군중을 향해 굽신대며 비굴하게 행동했다는 비판이 나왔지만 진실은 그게 아니다. 이들의 행동은 사랑과 동정을 표출함으로써 우리 모두가 구원받을 수 있는 방법이다. 뉴욕이 그랬고, 로스앤젤레스가 그랬다. 미시간주 플린트에선 크리스 스완슨 경관이 시위대를 향해 “헬멧을 벗고 경찰봉을 내려놓겠다. (시위대가) 어디로 향하든 밤새도록 같이 걷겠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더 이상 운이 좋지 않다. 본성이 그대로 드러났다. 시위대가 백악관으로 돌진하자 지하 벙커에 숨었다. 비밀경호국이 설득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겁쟁이’란 인상을 심어준 데 화가 난 트럼프는 스스로 용맹함을 증명하기 시작했다. 비밀경호국과 경찰, 저격수 등의 보호를 받으며 인근 세인트존스 교회로 들어가 성경을 꺼냈다. 이 상황에 일부는 환영하겠지만 대부분이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지율이 40%에 달한다지만 더 이상 올라가지 않고 있다.

원제=On Some Things, Americans Can Agree
정리=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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