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 1건에 기사 50명' 동남아 긱 노동자에 불어닥친 한파

입력 2020-06-12 10:30   수정 2020-09-09 00:03

6월 어느 아침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시 중심가. 오토바이택시 기사인 아지 씨는 아침부터 줄담배를 피우며 콜을 기다리고 있다. 자녀 넷을 둔 35세 가장인 그는 승차호출업체 고젝(Gojek)에 소속된 기사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터지기 전만 해도 하루 20회 이상 손님을 받았고 13~20달러 정도의 수입을 올렸다.


코로나19 봉쇄 조치로 교통서비스가 중단되자 아지 씨는 한 건에 0.7달러를 받는 음식 배달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공치는 날이 이어졌다. 봉쇄가 완화된 이후에도 그는 가족들의 끼니를 걱정하고 있다.

아지 씨는 "기사는 너무 많은데 주문은 너무 적다"고 말했다. 로이터통신이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에서 아지 씨와 비슷한 고젝 또는 그랩(싱가포르 기반 승차호출업체)의 기사 11명을 취재한 결과 상황은 비슷했다. 코로나19 이전보다 수입이 절반 아래로 줄어든 것이다.

베트남 하노이의 그랩 기사인 텅 씨는 "기사들이 대부분 빚을 내서 오토바이나 자동차를 구입했는데 팬더믹 때문에 대출금도 못 갚고 있다"며 차압 위기에 놓여있다고 말했다.

고젝과 그랩의 노조는 수천명의 기사가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특히 두 회사의 최대 시장인 인도네시아의 상황이 심각하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은 두 회사가 주주들에게 큰 과실을 돌려주는 동시에 수천만의 생활을 개선할 수 있다고 한 약속을 지키기 어렵게 하고 있다고 로이터는 분석했다.

동남아 국가 정부들은 코로나19 영향으로 수백만명이 실직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고젝과 그랩은 소속 기사들에게 음식 쿠폰, 저리 대출, 자동차 대여 등 다양한 방식의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경제 위기로 인해 실적이 악화되면서 이같은 지원도 줄여야 할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그동안 승차호출업체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온 투자자들이 코로나19을 계기로 이 사업의 성장성에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는 점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코로나 이전에도 승차호출업체들은 투자금을 기반으로 적자를 감수하면서 사세를 확장해 왔다. 올해 초 논의됐다 잠잠해진 두 회사 간 합병도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한스 파투워 고젝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이동서비스는 추락했지만 음식 배달은 예전과 비슷하고 택배는 크게 늘었다.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한 덕에 그나마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고젝과 그랩은 중국의 승차호출업체 디디추싱이 봉쇄 해제 이후 실적이 크게 개선된 것에 희망을 걸고 있다.

그랩과 고젝은 음식 배달 부문을 계속 키워왔다. 하지만 마진율이 낮고, 동남아시아의 많은 지역에서 배달 문화가 아직 자리잡지 않아 기대만큼 큰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

자카르타의 한 레스토랑 체인 최고경영자(CEO)는 "동남아에서는 집에서는 직접 요리를 하고 사무실에선 점심에 배달음식을 먹는 문화가 여전한데 많은 직장인들이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는 게 음식배달업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아지 씨는 "주문 한 건에 50명의 기사가 손을 들기도 한다"며 인도네시아의 음식배달을 '싸움'이라고 표현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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