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가스라이팅(gaslighting), 즉 상대방을 정신적으로 학대할 때 동원되는 말들이다. 가해자들은 상황 조작을 통해 상대방을 흔들어 자신의 영향력을 증폭시키고 그를 자유자재로 조종한다. 희생자가 스스로 자신은 정상이 아니라고 의심하게 만드는 심리전술이다.
가스라이팅은 1938년 영국 연극 ‘가스등(Gas Light)’에서 유래했다. 1948년에는 잉그리드 버그먼 주연의 동명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남편이 보석을 찾기 위해 윗집을 뒤지는데 사정을 모르는 아내는 남편이 외출할 때마다 가스등이 약해지고 위층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고 호소한다. 남편은 “당신이 잘못 보거나 들은 것”이라며 핀잔을 준다. 아내는 점차 스스로의 기억력과 정신상태를 의심하고 남편에게 더욱 의존하게 된다는 게 대략적 줄거리다.
당시엔 건물 전체가 가스를 나눠써 위층에서 불을 켜면 실제로 아래층의 가스등 빛이 약해졌다고 한다. 미국의 정신분석 심리치료사인 로빈 스턴이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정서적 학대를, 영화에서 이름을 따 가스라이팅이라고 명명하고 이론화하면서 유명해졌다.
최근 남북관계를 가스라이팅에 빗대는 분석이 나와 흥미롭다. 진 리 미국 윌슨센터 한국역사·공공정책센터장은 “북한은 한국이 관계증진을 간절히 원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6·15선언이라는 이정표 20주년을 앞두고 한국을 가스라이팅하고 있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북한이 아무리 도발과 막말을 해대도 항의조차 못 하고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며 ‘우리 탓’부터 하는 정부를 보면 기가 막힌 비유라는 생각이 든다.
흥미로운 점은 “가스라이팅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함께 만들어 낸 비정상적인 관계”라는 로빈 스턴의 분석이다. 보통 가해자만 욕하지만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가해자로부터 인정받고 관계를 유지하려는 피해자의 책임도 적지 않다는 얘기다. 정부의 대북정책 담당자들은 스턴의 저서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The Gaslight Effect)》부터 일독하면 어떨까.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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