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복지 개편 없는 기본소득은 재앙이다

입력 2020-06-11 18:10   수정 2020-06-12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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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도입을 두고 여야 간 경쟁이 치열하다. 현금 살포가 지난 총선의 승패를 결정지었다는 인식 때문이다. 다음 대선의 승패를 가를 이슈를 선점하겠다는 절박함은 이해되지만 누가 더 많은 현금을 줄 것이냐를 두고 벌이는 포퓰리즘 경쟁으로 국민에게 실망감을 주고 있다. 왜 기본소득제가 필요한지, 어떤 기본소득 모델을 선택할 것인지,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부작용은 없는지에 대한 철저한 평가에 기초한 정책경쟁은 찾아보기 어렵다.

현행 복지체계가 다양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고, 4차 산업혁명이 현실로 다가오면서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선거 때마다 인기영합적인 복지제도가 도입되면서 재정의 지속가능성이 위협받고 복지행정의 비효율성은 커지고 있다. 복지지출이 빠르게 증가하지만 빈곤문제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자리 잡고 있다. 일을 해서 돈을 벌면 복지수급 자격이 박탈되기 때문에 노동을 기피하는 복지 의존계층이 늘어나고 있어서다. 더욱이 4차 산업혁명이 인간의 모든 일자리를 앗아 갈 거라는 공포감이 고조되면서 기본소득을 도입해야 한다는 요구는 커지고 있다.

기본소득의 필요성은 높아지고 있지만 국가차원에서 기본소득을 도입한 나라는 없다. 기본소득을 현행 복지시스템의 대안으로 실행하기에는 부작용이 만만찮기 때문이다. 막대한 재정 부담, 기대와 달리 높은 근로 역(逆)유인 효과, 기득권 저항 등 검증하고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기본소득은 최소한 기존의 수혜금보다 많아야 정치적으로 수용가능하게 된다. 그러자면 현행 복지제도보다 훨씬 많은 재원이 필요하게 된다. 국민 1인당 월 30만원씩 지급한다고 하면 187조원이, 40만원을 지급한다고 하면 249조원이 필요하다. 한 해 예산의 절반을 복지에 쓰면서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욱이 현재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근로유인에 미치는 영향도 우려된다. 최근 2년간 실험한 결과 기본소득이 근로의욕을 고취시킨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는 핀란드 정부의 발표가 주는 시사점은 크다.

소득수준과 노동활동 여부를 묻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완전 기본소득보다, 기본권을 보장하되 소득수준을 고려해 차별적으로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음의 소득세’가 더 효과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음의 소득세는 정부가 최저소득보장 수준을 설정하고 여기에 미달하는 금액의 일정부분을 지원해주는 제도다. 음의 소득세는 빈곤 퇴출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현행 제도를 대체하기도 수월하고 재정부담도 작다는 장점이 있다.

그렇지만 음의 소득세 역시 근로의욕을 꺾을 수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 총량이 감소한다면 근로의욕 저하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 총량이 감소한다는 것은 아직 확인된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이를 전제로 기본소득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은 무리가 있다. 설령 그렇더라도 인간의 창의력과 노동력을 이용해 부를 창출하는 시대는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다. 성급하게 로봇세, 토지 배당세 등을 통해 재원을 조달한다면 투자의욕마저 꺾여 4차 산업기술에서 뒤처지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방대한 복지 관리체계와 비효율성, 지속 불가능한 재정부담, 의존적 복지 수혜자 양산 등 현 복지제도의 문제점을 고려하면 대안을 찾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나 현재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기본소득에 대해 우려가 큰 이유는 기존의 복지제도를 폐지한다는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 현행 복지제도를 대체한다는 기본전제가 엄수되지 않는다면 기본소득은 우리에게 재앙으로 다가올 것이다. 빈곤에서 벗어나는 최선의 수단은 현금 지원이 아니라 노동이라는 것은 변함없는 진리로 남을 것이다. 현행 복지제도의 개편을 포함해서 지금까지 제기된 다양한 기본소득 모델에 대한 철저한 평가와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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