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 기자] 패션과 아트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수 세기, 아니 어쩌면 인류의 태동부터 줄곧 함께한 키워드며 문화적인 수단이기도 하다. 실제로 20세기 후반부터 얼굴을 드러낸 ‘아트 디렉터(Art Director)’라는 직업은 이러한 관계를 총괄적으로 정의한다. 마케팅, 광고, 출판, 패션, 영화, 패션, 비디오 게임 등 다양한 분야에 손을 뻗는 그들은 브랜드의 밑그림과 진행 과정을 설계한다.
최근 해외 유명 디자이너들은 개인의 관념에 대해서 더욱더 설파적이다. 그간 이어져 온 컬렉션의 따분함은 이전처럼 꾹꾹 누를 수 없으며 자유 의지로 인한 창작 욕구는 색다른 곳에서 발휘된다. 이제는 패션 디자이너가 ‘옷만 만드는 직업’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예술보다는 ‘격 떨어지는 상업’으로 취급받던 패션, 이제는 그 경계를 넘어서서 대중 친화적인 콘텐츠로서 살아남는 듯하다.
그렇다면 타 예술 영역에 비해 패션만이 유일하게 갖는 속성은 무엇이 있을까. 가장 큰 요소는 바로 ‘변화’. 패션을 우리말로 가장 가깝게 번역한 의미가 ‘유행’인 만큼 변화라는 속성은 종속적 가치로 우리를 대변한다. 생활 양식에 가장 밀접한 영향을 끼친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의식주’ 중 ‘의’에 부합하기 때문에 실용적인 개념의 예술로도 일컬을 수 있는 것.
실제로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수공업적인 의류 생산 행위가 예술의 개념으로 쉽게 포함될 정도로 아트적 측면이 짙었다. 현대 패션 산업 시스템에서 이윤 추구에 집중했던 디자이너들은 이제 새로운 시장과 본인만의 영역에 들어서고자 한다. 디자이너의 순수한 창작 의지를 통해 관념적 산물을 창조해나가는 모습이다.
톰 포드의 영화 세계
1994년 럭셔리 브랜드 ‘구찌(Gucci)’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탁된 톰 포드(Tom Ford)는 구찌 디렉터 그 이상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90년대 중반 구찌의 판매량이 90% 이상 상승했으며 다음 세대의 디자이너들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타고난 감각과 특유의 쇼맨십을 통해 경영난으로 허덕이던 구찌를 부활시킨 것.
그는 언제 어디서나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감각적으로 재활용했다. 특히 ‘섹슈얼 코드(Sexual Code)’를 패션의 한 분야로 끌어낸 것은 파격적이었다. 여성의 곡선미, 누드 등 다양한 키워드의 판타지를 패션과 접목해낸 모습에 새로운 ‘구찌 마니아’들이 찾아왔다. 이후에는 2004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코스메틱 브랜드 ‘톰 포드’를 론칭하며 세상을 더욱 놀라게 한다.
그토록 자신 있던 섹슈얼 코드는 이번에도 빈번하게 활용되었다. 향수, 립스틱 등 매혹적인 속성을 내포한 제품들인 만큼 콘셉트와 비주얼 모두 강렬했다. 기업에 속한 디자이너로서가 아니라 디자이너 개인으로서 극적인 결과를 보여준 톰 포드. 모두가 “그는 이미 배부를 것이다”라고 외쳤지만 색다른 분야에 눈을 뜬 그였다.
영화배우를 꿈꾸었던 그가 이번에는 감독직을 열망했다. 모두가 한때의 허세라고 웃어넘겼지만 톰 포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2009년 그가 발표한 ‘싱글 맨(A Single Man)’은 ‘제66회 베니스 영화제(Venice Film Festival)’ 경쟁 부문에 초청됐으며 콜린 퍼스(Colin Firth)에게 남우 주연상을 안겼다. 데뷔작으로서 엄청난 성과였으며 평론가들도 그 작품성을 인정한 것.
이후 그의 두 번째 영화인 ‘녹터널 애니멀스(Nocturnal Animals)’ 또한 은사자상을 수상하며 그 영향력을 입증했다. 세련된 음악, 디테일한 소품 요소 등 예술적인 독창성이 두드러지는 모습이었다. 영화 속 아름다운 미장센은 감독 이름이 왜 톰 포드인지 보여주는 듯 했다. 디자인과 비즈니스 그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그에게 영화라는 예술 매체는 더없이 자유로운 공간이었을지 모른다.
미학 연구가, 조나단 앤더슨
20대에 이미 본인의 이름을 딴 브랜드 ‘J.W Anderson’을 론칭했으며 ‘로에베(Loewe)’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겸직한 조나단 앤더슨(Jonathan Anderson). 앤더슨 이전의 로에베는 보수적이고 무거운 실루엣이었다. 1846년 탄생해 170년의 역사를 지닌 로에베였지만 한정된 고객들과 셀러브리티만을 보유해 그 한계성을 드러냈다. 분명 고품질의 의상을 선보인 그들이었지만 로에베만의 독특한 감성을 이룩하는 데는 실패했던 것.
‘프라다(Prada)’의 ‘VMD(비주얼 머천다이저)’로 커리어를 시작한 앤더슨은 30살이 되던 해 로에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었다. 로에베의 역사와 발자취를 검토한 앤더슨은 첫 슬로건으로 ‘Past, Present and Future’를 내건 뒤 독창적 행보를 이끈다. 남성성과 여성성을 규정짓지 않고 정통적 텍스처를 벗어나 참신한 구조물을 탄생시킨다. 특히 ‘퍼즐 백(Puzzle Bag)’과 ‘해먹 백(Hammock Bag)’은 그의 해체주의적 성향과 포스트 모더니즘 성향을 그대로 보여준다.
로고 폰트의 변화도 인상적이었다. 간결하지만 한눈에 들어오는 폰트를 사용해 그저 ‘옛날 브랜드’가 아닌 ‘모던 웨어 브랜드’로 나아가는 것을 선택했다. 컬렉션에서의 그는 더욱더 깊고 선명하다. “과거의 디자이너들이 선보였던 옷은 미래를 위한 옷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디자이너가 생각하는 ‘좋은 컬렉션’은 ‘당장 갖고 싶다’라고 느껴지기보다는 ‘이 옷을 어떻게 입으라는 거지?’라고 궁금증을 유발하는 컬렉션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그의 컬렉션은 화려하며 극명한 전위를 불러일으킨다.
섬세하면서도 대담한 도전을 이어오고 있는 디자이너 조나단 앤더슨. 그가 기대하는 새로운 가치는 다름 아닌 예술이다. 1890년대 ‘아트 앤 크래프츠(Art And Craft)’ 운동 속 유명 작가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의 열렬한 팬이기도 한 앤더슨은 정교한 패턴과 우아한 색채의 가구 공예를 보며 큰 영감을 받는다고.
런던 ‘쇼디치(Shoreditch)’에 문을 연 ‘워크숍(WorkShop)’ 스토어는 그의 아트적 세계관을 명확히 보여주는 듯하다. 전시나 판매 목적이 아닌 이 쇼룸은 구성 자체가 참신하다. 그가 좋아하는 포토그래퍼, 뮤지션, 도예가 등 다양한 아티스트의 작품을 곳곳에 전시했으며 그것들과 가장 잘 어울릴만한 패션 소품을 마련했다. 로에베의 가구 컬렉션을 ‘밀라노 가구박람회(Milan Furniture Fair)’에 출품한 것도 이러한 욕심 때문이 아니었을까.
2017년 ‘헵워스 웨이크필드(Hepworth Wakefield)’ 갤러리에서 보여줬던 ‘Disobedient Bodies’라는 주제의 전시도 다채롭다. ‘몸의 미학’을 주제로 헬무트 랭(Helmut Lang), 레이 가와쿠보(Rei Kawakubo) 등 전위적인 디자이너의 의상들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패션 디자이너라는 공통점을 통해 활동한 시대가 다르지만 풍만한 교감을 이룰 수 있었던 것. (사진출처: 조나단 앤더슨, 톰 포드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공식 홈페이지, 영화 ‘싱글 맨’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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