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증권사에 은행과 비슷한 수준의 유동성 관리제도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지난 3월 금융시장은 증권사 유동성 위기설에 몸살을 앓았다. 코로나19 여파로 유로스톡스50 등 해외 주요지수가 급락하자 주가연계증권(ELS) 자체 헤지를 하는 대형증권사에 하루 최대 수조원에 이르는 마진콜(증거금 추가납입 통지)이 쏟아지면서부터다. 증권사들이 보유자산을 급히 내다 팔고 외화를 사들이는 과정에서 단기자금시장과 외환시장은 큰 혼란을 겪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11일 기자간담회에서 “코로나19 사태로 증권사의 민낯이 드러났다”며 증권사의 부실한 유동성 관리를 원인으로 꼽았다. 은 위원장은 “단기로 자금을 조달해 장기로 자산을 운용하는 증권사의 유동성 관리는 평상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나라가 위험해지자 미스매치 문제를 일으켰다”며 “이런 일이 또다시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는 만큼 미스매치를 줄이는 방향으로 지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증권사에 도입을 검토 중인 제도로 순안정자금조달비율(NSFR)이 거론된다. 바젤위원회 결정에 따라 2018년부터 시행된 NSFR은 향후 1년 동안 은행이 부채(필요안정자금)를 감당하기 위해 장기의 안정적 자금(가용안정자금)을 얼마나 충분히 확보하고 있는지 나타내는 지표다. 잔존만기 1년 이상 조달자금이 가용안정자금으로 분류된다.
현재 증권사에 대해서는 만기 3개월 이내 유동성자산을 유동성부채로 나눈 유동성비율 규제(100% 이상)가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유동성비율 관리 주기가 3개월 이내로 짧다 보니 증권사 자산과 부채 간 만기 미스매치를 부채질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국내 증권사의 단기자금 의존도는 66%에 달했다. 장기조달 비중은 4%에 그쳤다.
김영훈 한국신용평가 연구원은 “부동산 등 대체투자 확대로 증권사 보유자산의 평균 잔존만기가 크게 늘었지만 차입은 여전히 RP나 기업어음(CP) 등 단기성 조달에 의존하고 있다”며 “골드만삭스나 노무라 등 글로벌 투자은행(IB)들처럼 회사채나 신종자본증권 등 장기성 차입비중을 높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증권사 외화유동성 확대를 위해 외화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규제를 적용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외화LCR은 외화현금과 미국 국채 등 유동성이 높은 외화자산을 향후 1개월간 예상되는 외화순유출액으로 나눈 값이다. 은행이 금융위기 등 시스템적 위기상황 속에서도 최소 한 달간은 외화유출에 대비할 수 있는 고유동성 자산을 보유하도록 의무화한 것이다.
은행과 달리 증권사는 만기 3개월 이내 외화부채 대비 외화자산 비중을 뜻하는 외화유동성 비율(80% 이상)만 준수하면 된다. 그렇다보니 지난 3월 ELS 마진콜 사태와 같은 일시적 위기가 닥쳤을 때 증권사들이 충분한 외화자산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기획재정부 등 외환당국에서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업계에서는 "당국의 우려는 이해하지만 규제강화는 부작용이 클 수 있다"는 반응이 나왔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인한 증시급락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는데 그걸 잣대로 규제를 강화하는 건 불합리하다”며 “은행수준으로 유동성 관리를 강화할 경우 글로벌 투자 등 증권사 IB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고 토로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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