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가 넉 달째 중단되면서 말산업 생태계가 붕괴 직전입니다. 사육 농가들의 집단 폐업이 머지않았어요.”
김창만 한국경주마생산자협회장(사진)은 지난 13일 제주시 조천읍 협회회관에서 기자를 만나 “경마가 멈추면서 마주들이 말을 살 이유가 없어졌다”며 “경마 중단이 앞으로 3개월만 더 이어지면 농가들이 더 이상 버티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마사회는 지난 2월 23일 이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16주째 경마를 중단하고 있다.
한국경주마생산자협회는 경주마를 키우는 136개 농장이 뜻을 모아 만든 협회다. 약 5300마리를 사육하고 있는데, 이 중 매년 1100여 마리를 경주마로 공급하고 있다. 국산 경주마의 95% 규모다. 김 회장은 3대에 걸쳐 제주 동북면에서 농장을 운영하는 말산업 전문가다.
김 회장은 코로나19가 말산업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마가 열리지 않으면서 상금으로 살아가는 마주, 생산자, 조교사 등이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입었다는 설명이다. 김 회장은 “말산업은 마주들이 경주를 하면서 실력 없는 말을 도태시키고 새로운 말을 사야 유지되는 산업”이라며 “경마가 언제 열릴지도 모르는데 새로운 말을 사는 마주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농장을 운영한 수십 년 중 가장 힘든 시기”라고 덧붙였다.
이달 들어 열흘간 거래된 경주마는 18마리에 불과하다. 지난해 같은 기간(62마리)보다 70% 줄었다. 말의 평균 거래가도 지난해(4563만원) 대비 4.3% 하락한 4413만원이다. 김 회장은 “초지와 마사를 임차해 운영하는 영세 목장을 중심으로 사료값이라도 벌기 위해 생산비도 받지 못하고 말을 헐값에 넘기는 상황”이라며 “고정비가 큰 말산업 특성상 판로가 막히면 운영 자체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마사회는 오는 19일 마주와 생산자 200명만 참가한 ‘부분 관중’ 경마 대회를 추진하고 있다. 고사상태에 빠진 말산업을 구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김 회장은 “취지는 좋지만 부분 관중 경마는 마주나 생산자끼리 하는 몰아주기 식 미봉책일 뿐”이라며 “온라인 마권 판매 등을 통해 코로나19에도 활발히 경마를 하고 있는 선진국을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무관중 경마를 하고 있는 미국, 일본, 영국 등의 성공 사례를 농림축산식품부 등 당국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어 “경마는 말 목장이라는 농업 분야를 유지시키는 젖줄 같은 역할을 한다”며 “단순한 사행산업으로 봐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제주=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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