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논설실] 코로나가 소환한 '자전거 열풍'

입력 2020-06-16 09:31   수정 2020-06-16 09:37


코로나가 국내·외를 막론하고 2차 대확산 조짐이다. 이에따라 가까스로 기지개를 켜려고 하던 국내 관광과 소비 등 내수 위주의 경제활동도 다시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해지는 요즘이다. 그런데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던가. 이 와중에 전혀 예상치 못한 호황을 누리는 업종들이 가끔씩 눈에 띈다.

이른바 '언택트' 소비시대를 맞아 배달 등 업종이 유례 없는 호황을 입고 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대로다. 방구석에서 주로 하는 게임도 같은 맥락에서 코로나 특수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게임 이용자 수가 작년보다 50% 늘었다는 조사도 나왔다. 게임 등의 특수로 반도체 수요가 늘고 그래서 반도체 업체 역시 반사 이익을 누렸다는 것은 이미 보도된 바 있다.

언택트도 아닌데 특수 누리는 아웃도어 스포츠

그런데 '언택트'나 '방구석' 관련 산업이 아닌데도 코로나 특수를 누리는 업종이 있다. 바로 골프와 자전거다.

골프산업의 대박 조짐은 대략 4월부터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코로나 확산으로 한참 사람들이 '만남'을 자제하던 때였지만 봄철 골프시즌 개막을 맞아 당시에도 '솔솔' 골프장을 찾는 인구가 늘어나고 있었다. 야외 넓고 트인 공간인 만큼 코로나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은데다 모두 아는 지인끼리 골프를 치는 만큼 그리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골퍼들이 삼삼오오 필드로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코로나로 해외여행도 식당도 맘껏 못가는 스트레스를 푸르른 필드에서 풀자는 욕구도 한몫했다. 경기중에는 마스크를 끼고 끝나고 목욕은 생략하거나 간단히 샤워만 하고 욕탕에는 들어가지 않는 방식으로 알아서 조심하다 보니 지금까지 국내 골프장에서 코로나에 감염됐다는 이야기는 한 건도 없다.

그러다 보니 주말마다 골프장은 부킹으로 꽉차고 마침 저금리로 시중 여유자금이 풍부해지면서 골프장 회원권 값마저 10년간의 지리한 하락을 끝내고 상승 반전되기까지 했다. 한달새 회원권 가격이 1억원 급등한 곳도 있다. 연초 대비 50%나 급등한 수도권 골프장도 적지 않을 정도다.

자전거 산업, 작년까지만 해도 "다 죽는다" 통곡

더욱 특이한 것은 자전거 업계다. 자전거는 2018년말, 아니 지난해까지만 해도 "다 죽는다"는 곡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던 산업이었다. 국내 자전거 산업은 2000년대 MTB(산악자전거) 흥행과 2010년 경 유행하기 시작한 로드바이크(이른바 싸이클)을 중심으로 급속히 성장했었다. 그러던 것이 2016년부터 급격한 하락세를 타기 시작했다. 경기가 나빠지기 시작한데다 서울시가 본격적으로 공급하기 시작한 '따릉이'가 소위 생활자전거 시장을 잠식하면서 벌어진 풍경이었다. 저렴한 가격에 빌릴 수 있는 따릉이가 늘면서 잠시 장을 보거나 동네 돌아다니는 마실용 자전거나 가끔 레저용으로 타는 생활자전거는 설 땅이 없어져 버렸다.

게다가 4~5년전부터 미세먼지가 점점 심해지는 통에 자전거 인구는 줄어만 갔다. 경쟁적으로 늘어난 자전거 가게들과 대형 자전거 수입사들도 출혈경쟁을 벌이며 시장질저조차 무너져 내렸다. 지난해 하반기만 해도 이월모델은 30~40% 할인된 가격에 땡처리 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코로나, 쓰러진 자전거를 일으켜 세우다

그러던 자전거 업계가 화려하게 부활했다. 올초 본격화된 코로나는 3,4월들어 봄이 되도록 잠잠해지기는 커녕 기승을 더해갔다. 하지만 몇개월째 '집콕'과 언택트를 강요받은 사람들은 날씨가 풀리면서 뭔가 야외로 탈출구가 절실했다. 하지만 밖에서 사람들과 어울리기에는 감염우려가 여전했다. 그 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생각해 낸 게 바로 자전거였다.

우선 자전거는 기본적으로 혼자 탄다. 팀이나 동호회에서 함께 타더라도 일단 라이딩 할 때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떨어져 혼자 타기 때문에 감염 위험은 상대적으로 적다. 게다가 자전거를 타고 한강변이라도 달려보면 코로나로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뚤리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코로나 스트레스가 한 방에 날아간다.

지하철이나 버스처럼 다수가 함께 이용하는 대중교통시설에서 코로나 감염위험을 걱정하느니 차라리 자전거를 타고 통근을 하려는 사람이 늘어난 것도 자전거 수요를 부추기고 있다. 돈도 절약하고 운동도 된다는 장점도 있다.

코로나는 대다수 헬스클럽의 문을 사실상 닫게 만들었다. 겨우내 운동 부족에 시달린 사람들은 늘어난 뱃살도 줄여야겠고 한풀이 운동이라도 해야 하는데 이런 용도로 자전거 타기만한 운동도 드물다.

미세먼지가 예년에 비해 줄어든 것도 자전거 수요를 더욱 자극하고 있다. 코로나로 중국 산업시설의 상당부분이 중단됨에 따라 중국발 미세먼지 유입이 줄어든 것이 사람들을 야외로 불러들인 또 다른 요인이 된 것이다.

해외여행이 막히면서 국내에 갇혀버린 이들의 답답한 마음을 달래는 데도 자전거는 꽤 괜챦은 대안이다. 특히 한강을 따라 팔당~양수리~북한강 혹은 남한강으로 이어지는 자전거 길을 달려보면 굳이 외국을 나가고 싶은 맘이 잦아들 정도로 기가막힌 풍경이 펼쳐진다.

코로나로 자전거 공급은 뚝 떨어져

자전거 수요는 폭발하고 있는 반면 공급은 예년보다 훨씬 줄어들었다. 전 세계 자전거 생산의 90%를 차지하는 중국에서 코로나 여파로 자전거 생산이 대폭 줄었고 최근에서야 생산이 재개됐기 때문이다. 고급 자전거 시장울 장악하고 있는 대만의 경우도 이래저래 코로나의 영향으로 생산 출하 수출 등이 모두 위축돼 최소한 단위의 수출만 명맥을 유지할 정도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국내 브랜드 자전거는 물론 동호회인들 사이에 인기가 높은 수입산 유명 브랜드 자전거의 경우 눈을 씻고 찾아봐도 물건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물론 가격이 비교적 저렴한 생활자전거를 구입하는 것은 여전히 그리 어렵지 않지만 준 전문가형 소비자들이 원하는 고급형 로드자전거의 경우 심각한 품귀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전문 매장마다 손님들의 예약주문이 폭주하고 있지만 관계자들은 언제 물건이 들어올지 전혀 약속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반응이다.

판매는 늘고 가격은 오르고

이렇다 보니 자전거 가격은 새것은 물론이고 중고 마저 가격이 적잖게 오르고 있다. 1~2년전 생산된 이월 상품마저 출고당시 가격으로 매매되고 중고 자전거도 1년전보다 더 높은 가격을 불러도 인기모델의 경우 없어서 못살 지경이다. 이런 현상은 국내만이 아니고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자리잡았다.

미국에서는 지난 4월 성인용레저 자전거 판매고가 예년의 3배나 수직 상승했다고 한다. 미국이 자전거를 주로 수입하는 중국과의 무역 분쟁으로 자전거 수입이 여의치 않은 상황임을 감안하면 대단한 판매실적이 아닐 수 없다. 국내 자전거 판매 관련 정확한 통계는 찾기 어렵지만 수요 대비 공급이 턱없이 부족해 관련 업계 종사자들은 "지금처럼 자전거 구하기 힘든 적이 없었다"고 말할 정도다.

보통 7,8월 경이면 내년 모델이 출시되는데 자전거 업계에서는 유명 인기 브랜드의 경우 특별히 제품 사양이 개선되지 않은 모델들도 2021년형은 2020년형에 비해 가격이 비교적 큰 폭으로 오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만큼 전 세계적으로 수요는 폭증하고 있는 반면 공급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삶은 계속되고 시장도 돌아간다

코로나로 전에 없는 글로벌 경제가 충격을 받고 거의 모든 산업이 올스톱 되다시피하고 주식시장 역시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던 게 불과 서너달 전이다. 물론 코로나 충격은 현재 진행형이고 앞으로 얼마나 더 지속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삶이 계속되고 시장이 살아 있는 한, 그 속에는 그 나름의 새로운 환경에서 꽃을 피우는 또 다른 산업이 있게 마련이다. 올해 자전거 산업이 이토록 호황을 누릴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나. 아무리 앞이 안보이는 컴컴한 터널 속에서도 지나친 절망보다는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야할 이유이기도 하다. 해지면 선선해지는 저녁, 자전거를 끌고 한번 바깥 공기도 좀 쐬보자◁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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