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포스트 코로나, 노동유연성 높여 '국내 제조' 강화해야

입력 2020-06-16 18:03   수정 2020-06-17 00:19

코로나 이후 혁신생태계 변화와 대응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우리의 삶을 미래로 빠르게 옮겨놓고 있다. 언젠가 재택근무나 온라인 개학을 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미·중 패권경쟁도 미국의 코로나19 사망자가 10만 명을 넘어서면서 이제는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국내외 경제는 어떤 특징을 보일까. 확실한 것은 4차 산업혁명 중심의 일자리 변화가 뚜렷해질 것이고, 미국 주도로 글로벌 혁신 생태계가 재편될 것이라는 점이다. 코로나19는 전 세계적으로 일자리의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다. 그 중심에는 사회적 거리두기와 4차 산업혁명이 있다.

온라인 근무가 가능한 재택근무 직종과 택배기사처럼 대체가 어려운 필수 직종은 고용에 별다른 변화가 없다. 온라인 쇼핑은 매출이 되레 큰 폭으로 늘었다. 반면 항공편이 끊긴 관광과 오프라인 백화점 쇼핑처럼 꼭 필요하지 않거나 온라인 대체가 가능한 비필수 직종은 일자리가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코로나19가 종식된다고 하더라도 이들 비필수 직종 일자리가 과거 상태로 돌아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사람의 행동이 습관으로 굳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66일이라고 한다. 지난 3월 22일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작한 뒤 이제 90일 지나고 있다. 희망적 예측대로 내년 초 백신이 개발된다고 해도 지금의 상황에 익숙해지는 데 충분한 시간이다. 백신 개발이 더 늦어진다면 많은 일자리가 이대로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혁신 생태계에서 미국의 위상은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지난달 대만 TSMC는 미국의 압박을 못 이기고 중국 화웨이로부터 신규 주문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글로벌 5세대(5G) 통신장비 시장 점유율 1위인 화웨이에는 치명적이다.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미국이 그렇게 압박하는 것도, TSMC가 이를 받아들이는 것도 어려웠을 것이다. 미국은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세계 전략을 견제하는 경제번영네트워크(EPN·economic prosperity network) 구축에도 나섰다.


일자리 증대, 세원 확보가 중요

4차 산업혁명에서 미국 기업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반면 중국 기업은 큰 내수시장 덕분에 덩치는 커졌을지 몰라도 핵심 경쟁력을 갖고 있지는 못하다. 양국의 대표적인 테크 기업을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우리는 구글로 검색하고 아이폰을 사용한다. 아마존웹서비스는 국내 클라우드 인프라 서비스 시장의 51%를 차지한다. 반면 알리바바, 텐센트, 화웨이 제품과 서비스는 거의 쓰지 않는다. 모바일 게임에서 중국의 시장 지배력이 높지만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아니다.

대변혁의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첫째, 국내총생산(GDP)을 높이는 데 주력해야 한다. 가장 좋은 복지는 당연히 일자리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은 일자리의 급변을 예고한다. 코로나19로 인해 그 변화는 시작됐다. 국민의 기본생활을 지원할 수 있도록 사회보장 시스템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세금이 필요하다. 일자리만큼 세원 확보가 중요한 시대가 됐다.

국내 생산은 국가 전략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코로나19 사태로 선진국은 마스크 확보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반도체, 5G 통신 장비는 강대국이 우리를 쉽게 볼 수 없게 하는 몇 안 되는 전략 자산이다. 해외로 나간 기업을 최대한 국내로 불러들이고 국내 생산시설이 해외로 나가지 않도록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노동유연성을 높여야 한다. 자동화율 세계 1위 국가지만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장비 국산화·첨단화를 통해 스마트 팩토리 구축을 가속화해야 한다. 일자리 관점에서는 저부가가치 생산시설의 국내 유입이나 자동화가 부정적일 수 있지만 전략 자산 및 세원 확보 차원에서는 매우 중요하다.

둘째, 그간 미뤄뒀던 4차 산업혁명 관련 제도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 대표적 사례로 원격의료를 꼽을 수 있다. 코로나19 이후 2차 감염을 막기 위한 비대면 진료가 중요해지면서 정부는 전화상담을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많은 의원이 참여했고 환자의 평가도 긍정적이다. 그럼에도 의사협회는 여전히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렇다고 정부나 여당이 적극적인 것도 아니다. 원격의료는 곧 의료 영리화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시민단체가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잘할 수 있는데 왜 자꾸 원격의료를 도입하려고 하느냐는 소극적 자세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번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원격의료의 필요성을 모두가 체감했다. 우리가 원격의료를 안 한다고 다른 나라도 안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계속 머뭇거리는 사이 경쟁국의 원격의료 기술과 관련 산업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원격의료가 성공하려면 의사가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물론 정부가 나서서 밀어붙인다고 될 일은 아니다. 어떤 의료 행위를 할지는 의사가 결정하기 때문이다.

원격의료 확대가 '디지털 뉴딜'

무엇보다 원격의료가 활성화되면 환자가 대형병원으로 집중되고 결국 1차 의료기관은 고사할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1차 의료기관부터 원격의료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원격의료 확대로 인한 오진은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다. 의사를 믿으면 된다. 원격의료를 하더라도 의료 행위에 대한 책임은 의사에게 있기 때문이다.

원격의료 확대를 위해 정부 재정을 마중물로 투입할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건강보험 내에서 해결하려고 하면 안 된다. 벤처 활성화를 위해 공공조달 시장을 활용하는 상황에서 공공성이 강한 의료에 대한 지원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어차피 원격의료가 시행되지 않으면 관련 산업은 정부가 아무리 예산을 투입해도 진흥되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디지털 뉴딜’이다.

셋째, 그간 당연시해 온 각종 규제를 글로벌 생태계 관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대표적 사례로 공공기관 소프트웨어 시스템 개발의 대기업 참여제한 제도가 있다. 이 제도는 대기업 횡포에 맞서 중소·중견기업의 사업 영역을 보장해준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문제는 우리가 활동하는 생태계가 국내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갈라파고스 규제' 철폐해야

교육부는 4세대 시스템(NEIS) 사업에 대한 대기업 참여제한 적용을 예외로 인정해줄 것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세 차례나 요청했다. 과기정통부는 모두 거절했다. 과기정통부의 입장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지금 우리 교육정보 시스템 상황을 보면 주객이 전도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19 이후 초·중·고는 온라인 수업을 하고 있다. 여기에는 주로 구글 클래스룸, 유튜브, 줌 같은 미국계 기업의 서비스가 사용된다. 이렇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현재 국내 시스템으로는 온라인 수업이 어렵기 때문이다. 교육청과 학교 시스템 모두 열악하기는 마찬가지다. 구글 클래스룸 사용이 당장은 문제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교육 자산이 해외 기업 서버에 쌓이면 향후 데이터 주권은 물론 지식재산권 차원에서 문제가 될 소지가 크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변화를 수용하겠다는 적극적인 자세다. 어떻게든 지금처럼 하면서 버티겠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판을 크게 봐야 한다. 당장의 작은 변화를 두려워하면 더 큰 기회를 놓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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