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산업이 서울 강남구 신사동 도산공원 인근에 운영 중인 ‘아크로갤러리’는 고급 주택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찾는 신흥 명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사태에도 하루 평균 200명 넘는 관람객이 모여들고 있다. 공급면적 313·515㎡짜리 펜트하우스 내부를 구경하기 위해서다. 한 펜트하우스 주방 식탁엔 325만원짜리 접시 세트가 놓여져 있고, 에르메스 벽지를 바른 드레스룸엔 샤넬 재킷이 걸려 있다. 주차장에 세워진 3억원 상당의 맥라렌도 전시품 중 하나다. 아크로갤러리 관계자는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부부의 인테리어와 라이프스타일 등을 간접 체험할 수 있는 전시”라며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 소비자의 반응이 좋아 전시 기간을 다음달까지 연장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대형 건설사들이 앞다퉈 서울 강남 한복판에 ‘갤러리’를 열고 소비자에게 다가가고 있다. 2000년대 분양 붐을 타고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한 갤러리는 단순히 분양 홍보관이나 모델하우스로 이용돼 왔다. 하지만 최근엔 각종 전시회, 콘서트, 문화강좌, 플리마켓(벼룩시장) 등 다양한 콘텐츠를 담은 복합 문화 공간으로 진화하는 추세다. 주택 시장에서 브랜드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이미지 마케팅으로 잠재적 소비자까지 끌어안겠다는 전략이다.
고급 아파트 브랜드 차별화 나서
대형 건설사 갤러리는 강남구 신사동, 대치동, 도곡동 등 서울 노른자 땅에 터를 잡고 있다. 최근 포스코건설은 신사동에 ‘더샵갤러리’를 새로 열었다. 롯데건설도 지난해 말 서초구 서초동에 ‘르엘캐슬갤러리’를 개관했다. 현대건설의 ‘힐스테이트 갤러리’는 도곡동에, ‘자이갤러리’(GS건설)와 ‘써밋갤러리’(대우건설)는 각각 대치동에서 운영 중이다. 삼성물산의 ‘래미안갤러리’는 송파구 문정동에 있다. 이들 갤러리엔 여느 미술관과 마찬가지로 전시를 주관하는 관장과 큐레이터 등이 상주하고 있다.
이들이 강남 번화가에 문을 연 건 고급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해서다. 명품 브랜드숍, 수입차 딜러숍이 강남에 있는 것과 비슷한 이유다. 고급 주택에 대한 수요가 있는 소비자에게 ‘눈도장’을 찍기 쉬운 위치라는 얘기다. 강남권 재건축 수주전에서 조합원에게 자연스럽게 브랜드를 알리는 홍보 효과도 누릴 수 있다. 조현욱 현대건설 브랜드마케팅팀장은 “각종 프리미엄 가구와 인테리어가 갖춰진 주택을 직접 보고 체험하는 것이 어떤 광고보다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최근 건설사들이 차별화한 프리미엄 브랜드를 내놓는 것도 갤러리 운영과 관련이 있다. 현대건설의 ‘힐스테이트’와 구분되는 ‘디에이치’, 대림산업의 ‘e편한세상’과 구분되는 ‘아크로’ 등이다. 대우건설도 3년 전 자체 갤러리를 하이엔드 브랜드인 ‘푸르지오 써밋’을 소개하는 써밋갤러리로 재단장했다. 롯데건설의 ‘르엘’도 마찬가지다.
뮤지컬 공연 등 문화콘텐츠 다양
미술 전시, 콘서트 등 아파트 분양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콘텐츠도 많다. 당장 집을 살 계획이 없는 잠재 소비자까지 끌어들이겠다는 전략이다. 와인 클래스, 뮤지컬 공연, 절세 강좌와 연금설계 강좌 등 교양 강의를 제공하는 곳도 있다. 사전 신청만 하면 대부분 무료다.
써밋갤러리의 일부 공간은 광고나 드라마 촬영 장소로 제공되기도 했다. 래미안갤러리는 내부 아트홀에서 콘서트를 열고, 아름다운가게와 나눔장터를 열었다. 힐스테이트갤러리는 강남 주민에게 무료로 대관도 해 준다. 한 갤러리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 이전 각 건설사 갤러리는 주말마다 가족 단위 고객과 ‘SNS 인증’이 활발한 2030세대로 북적였다”고 말했다.
상설 갤러리는 분양 때마다 따로 마련하는 개별 모델하우스보다 운영 측면에서 유리하다. 철거식 가건물로 이뤄지는 모델하우스는 부지 임차부터 허가, 설계, 인테리어 등을 완성하는 데 최소 3개월 이상이 걸린다. 하지만 갤러리를 활용하면 분양할 때마다 별도 모델하우스를 신축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서울 도심에 선보일 수 있어 비용 절감 효과가 크다. 롯데건설은 지난해 ‘르엘신반포센트럴’ ‘르엘대치’ 등의 모델하우스를 강남역 인근에 있는 자체 갤러리에서 선보였다.
한 분양 관계자는 “모델하우스 하나를 새로 지으려면 평균 20억원가량이 든다”며 “상설 갤러리를 운영하면 이 비용을 아끼고 브랜드 홍보도 할 수 있어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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