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훈(72·사진)은 16일 서울 서교동 디어라이프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첫 판타지 소설 《달 너머로 달리는 말》(파람북)을 쓰게 된 배경을 이같이 말했다. 이 작품은 그가 《공터에서》 이후 3년 만에 낸 장편이다.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소설을 주로 써온 그가 도전하는 첫 판타지 소설이다. 작가는 기록으로 전하지 않는 아득한 시간과 막막한 공간을 신화적 상상력으로 채워놨다. 그는 “그동안 역사가들조차 인간의 감성에 비치는 적개심에 대해 설명하지 못했다”며 “야만의 문화라는 것들을 기록하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생명의 모습을 그려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소설은 세계를 인식하는 바탕과 삶을 구성하는 방식이 다른 두 나라 초(草)와 단(旦)의 물러설 수 없는 전쟁 이야기다. 그는 “유목국가인 초와 농경국가인 단의 대립이 나온다”며 “유목을 청산하고 땅에 들러붙는 과정에서 느낀 인간의 수많은 갈등을 통해 제 무의식 속에 있던 세상의 모든 고정물에 대한 불신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소설의 중심에는 두 마리 말(馬)이 등장한다. 초승달을 향해 밤새 달리는 신월마(新月馬) 혈통의 토하와 달릴 때 핏줄이 터져 피보라를 일으키는 비혈마(飛血馬) 혈통의 야백이다. 두 말은 초와 단의 장수들을 태우고 전장을 누비며 참혹하고 허망한 전쟁을 목도한다. 말을 주요 캐릭터로 등장시킨 이유는 무엇일까. “힘이 강하고 성품이 강인하며 외모가 아름다운 말은 문명과 야만의 동반자였어요. 10여 년 전 미국 아메리칸 인디언 마을에서 본 야생마들을 보고 인간에게서 탈출하는 말의 자유를 생각했어요. 소설에서 인간에게 저항하는 야백과 토하를 통해 인간의 문명과 야만을 말이 감당해나가는 과정을 그려내고자 한 거죠.”
소설 속 초원에서 벌어지는 야만적 모습들은 구조적 측면에서 이 시대 야만성과 크게 다를 게 없다는 걸 느끼게 된다. 작가는 이 시대의 두드러진 야만을 “약육강식을 제도화해 심화시키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프랑스 혁명이건 볼셰비키 혁명이건 인류사의 모든 혁명은 인간의 약육강식을 견딜 수 없기에 벌어진 거예요. 그 혁명들은 끝내 약육강식의 운명을 돌파하지 못했죠. 여전히 약자가 살기 위해선 내 고기를 강자에게 먹이로 줘야만 살 수 있는 세상이에요.”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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