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셋'으로 강남 잡겠다더니…'풍선효과'로 수도권 집값 더 불안

입력 2020-06-16 17:22   수정 2020-06-17 01:37

꽃들이 만발하고 잔디가 짙은 녹색을 띤 초여름. 평화로운 광장에 모인 마을 사람들이 풍년을 기원하는 제비뽑기를 한다. 젖먹이 어린아이부터 77세 노인까지 모두 제비를 뽑고 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뽑힌 사람은 마을 사람들의 돌에 맞아 죽는다.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도 모르는 이 마을의 잔혹한 관습이다.


20세기 영문학을 대표하는 셜리 잭슨의 1948년 단편소설 《제비뽑기(The Lottery)》는 내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공포가 오랜 기간 계속되면 내성이 생긴다. 어쩌면 자신이 희생자가 될지도 모르지만, 마을 사람들이 태연하게 광장에 모이는 이유다. 규제도 마찬가지다. 시장을 조종하고 싶다면 계속해서 더 강한 규제를 내놓아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21번째 부동산 대책이 17일 발표된다. 이번 정부가 2017년 5월 출범했으니 한 달 반에 한 번꼴로 규제를 발표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 정부 들어서 서울 아파트값이 마이너스로 돌아선 시기는 딱 세 번 있었다. 2017년 8·2대책이 나온 직후인 그해 9월 -0.01%로 내렸다. 가장 오랜 기간 하락세를 보인 것은 ‘규제 끝판왕’ 2018년 9·13대책 이후로 그해 12월부터 2019년 6월까지 7개월 동안 하락했다. 지난해 12·16대책 여파로 지난 4월(-0.1%)과 5월(-0.2%)도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2017년 8·2대책을 발표하면서 “강남의 다주택 보유자는 본인이 사는 집 말고 파시라”고 경고했다. 정부는 줄곧 부동산을 통한 불로소득은 더 이상 없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집값은 어김없이 반등했고, 정부 말을 믿고 판 사람만 ‘바보’가 됐다.

정부는 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핀셋 규제’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핀셋이 아니고 ‘두더지 잡기’였다. 한 곳을 잡으면 다른 곳에서 튀어나오는 ‘풍선 효과’가 반복됐다. 집값은 잡지 못한 채 전셋값 급등 등 부작용만 키웠다.

작년 12·16대책 후 규제가 덜한 수도권 남부가 뛰자 올해 2·20대책을 통해 수원, 안양, 의왕 등 수도권 다섯 곳을 추가로 조정대상지역에 포함시켰다. 그러자 그외 지역이 들썩였고, 이번 17일 대책에서는 인천과 군포, 안산 등 수도권 대부분 지역이 규제지역으로 묶일 전망이다.

가격대별로도 9억원 초과 아파트 대출을 막자 6억원 이하 아파트가 올랐다. 서울 아파트값은 이달 첫째주 9주간의 하락세를 멈췄고, 둘째주 0.02% 상승세로 돌아섰다. 반등을 이끈 것은 강남이 아니었다. ‘금·관·구’(금천·관악·구로구) 등 전통적인 소외 지역이었다.

서울에서 이제 10억원이 넘는 아파트는 흔한 게 됐다. 그냥 내버려뒀으면 강남 등 일부 지역의 집값만 높은 수준을 유지했을 것을, 정부가 어설픈 규제로 서울 모든 지역의 집값을 올려놓았다는 원성이 터져나온다.

젊은 세대의 절망은 특히 크다. 서울에서 살 곳을 못 구해 외곽으로 밀려나는 것은 일상이다. 힘들게 잡은 직장을 포기하고 고향인 지방으로 내려가는 것도 낯설지 않다. 2030세대가 직장 생활을 하면서 서울 집을 장만하기는 거의 불가능해졌다. ‘로또’라는 청약 당첨도 남의 이야기다.

이번 대책의 핵심으로 꼽히는 것은 갭투자 막기다. 전세를 끼고 주택을 구입한 뒤 일정 기간 내 입주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부과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물론 갭투자의 폐해가 크지만, 시장에서는 벌써부터 가뜩이나 부족한 전세 물량의 씨가 마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0번 넘게 처방을 내렸는데도 환자의 병이 낫지 않는다면 진단 자체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의심을 해봐야 한다. 집은 ‘매슬로의 인간 욕구 5단계 이론’에서 가장 기초적인 먹고, 자고, 입는 생리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곳이다. 경제학의 기본인 ‘수요·공급의 원칙’도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근본적으로 ‘집값 안정’은 정책의 장기 목표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모든 국민이 살기 좋은 곳에서 걱정 없이 살 수 있게 해주는 게 궁극적인 목표가 돼야 하지 않을까. 이제 강남 등 특정 지역만 ‘투기 세력’ ‘적폐’ 등으로 비판하기 힘들게 됐다. 서울과 수도권 전체가 올랐기 때문이다. 규제가 나오면 시장은 주춤하겠지만 또 내성이 생길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이번 정부가 끝나기 전에 전국이 부동산 규제지역이 될지도 모르겠다.

ventu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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