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캐피탈 인수를 위한 물밑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이달말 매각 예비입찰을 앞두고 국내외 사모펀드(PEF) 운용사와 중국·호주 금융사를 비롯해 국내 금융지주사들도 검토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전이 흥행에 성공해 효성그룹이 매각 대금으로 5000억원 이상을 받을 수 있을지 업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효성그룹은 금산분리 규제에 따라 금융사인 효성캐피탈 지분 97.49%를 연내 매각해야 한다.
16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최근까지 효성캐피탈 매각측으로부터 국내·외 전략적투자자(SI)와 사모펀드(PEF) 운용사 등 20여곳이 투자설명서(IM)을 받아간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효성캐피탈 인수를 검토하고 있는 일부 PEF 운용사들은 최소 4000억원대 중반의 효성그룹 희망 가격이 기업가치에 비해 비싸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입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효성그룹 대신 효성캐피탈의 주인이 되면 단기간에 가치를 끌어올릴 자신감이 생긴 원매자들이 늘어났다는 얘기로 해석된다.
◆악전고투하며 선전해온 효성캐피탈
원매자들은 효성캐피탈이 ‘제품원가’에 해당하는 조달금리가 높아진 악조건 속에서 영업해온 점에 주목하고 있다. 금리 경쟁력이 없어 신차할부금융과 가계대출 시장 등에는 명함도 내밀기 어려운 상태다. 그럼에도 지난해 영업이익 350억원 당기순이익 276억으로 2조3000억원대 자산규모에 비해 나쁘지 않은 성적을 냈다.
효성캐피탈은 2010년대 초중반 효성그룹 재무건전성 악화의 여파로 회사채 신용등급이 A+에서 지속적으로 하락, 현재 A- 수준으로 떨어졌다. 효성캐피탈은 지난 4월 회사채 3년 만기물을 금리 연 2.903%에 발행한 반면, 신용등급이 세 단계 위인 신한캐피탈은 연 1.792%의 회사채 금리로 자금을 조달했다. 대충 계산해도 금융지주사 등 신용등급 높은 곳이 효성캐피탈을 인수하면 조달금리 하락 효과만으로 100억원 이상의 추가 수익을 얻는다는 얘기다.
원매자들은 주인이 바뀐 후 실적이 개선된 아주캐피탈 사례를 주목한다. 2017년 우리은행을 등에 업은 PEF 웰투시인베스트먼트에 인수된 아주캐피탈은 신용등급 상향과 포트폴리오 개선으로 급성장했다. 지난해 신용등급이 A+로 상향되면서 당기순이익 1016억원의 역대 최대 실적을 냈고, 자산규모도 2017년말 5조3000억원(별도기준 3조7000억원)에서 지난해말 6조8000억원(5조7392억원)으로 불어났다.
산업기계나 의료기기 리스 등 진입장벽이 높은 사업 비중이 높다는 점도 강점이다. 효성캐피탈은 설비금융에 전문성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다. 설비금융(약 39%)과 기업대출·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을 합친 비중이 영업자산의 절반 이상이다. 대부분 대형 캐피탈사들은 자동차금융과 소매대출이 50% 이상인 반면 효성캐피탈의 이들 비중은 30%에 불과하다.
◆‘효성 벤츠’가 도와준다면
효성캐피탈 인수 희망 기업들은 효성그룹의 수입차 판매사업에 주목하고 있다. 효성그룹은 벤츠와 재규어랜드로버를 비롯해 도요타와 렉서스 판권을 확보해 국내에 판매하고 있다. 페라리와 마세라티도 수입한다. 벤츠를 판매하는 계열사 더클래스효성은 지난해에만 1조1237억원의 매출을 기록했을 정도다.
그룹 계열사임에도 효성캐피탈의 수입 신차 할부금융실적은 미미하다. 수입차 할부는 고소득자 대상 담보대출 성격을 갖고 있어 금리가 낮아야하는데, 효성캐피탈의 조달금리로는 다른 캐피탈사와 경쟁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원매자들은 효성그룹이 매각 이후에도 브랜드 사용권과 계열 수입차 판매사들과의 협업을 보장해 주면 빠르게 자산규모를 키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신차 할부금융은 수익성은 낮지만 부실 위험이 낮고 특별한 전문성을 필요로하지 않아 금리만 낮추면 점유율을 올릴 수 있다고 여겨진다.
효성그룹이 협조한다면 효성캐피탈의 현재 주가순자산비율(PBR) 1.0 이상 가격인 4000억원대 중반 이상도 비싼게 아니라는 계산이다. 지난해 PEF운용사 JKL에 롯데손해보험을 매각한 롯데그룹은 상호를 5년간 무상으로 사용토록 하고, 그룹 퇴직연금 물량도 유지하는 등의 조건을 수락했다. 롯데손보 지분도 5%가량 계속 보유하기로 했다.
◆코로나 사태에도 금융사 인수한 일본 자본
이달초 일본 신세이은행이 뉴질랜드의 자동차·설비 금융사 UDC파이낸스를 PBR 1.26 가량인 4억7700만달러에 인수한 사례도 효성그룹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현행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캐피탈사의 경우 금융당국의 대주주적격성심사 대상이 아니다. 외국 금융사들도 쉽게 인수전에 뛰어들 수 있어, 해외에서 활로를 찾는 일본 금융사 등의 참여도 기대된다.
다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효성캐피탈사의 주요 고객들인 기업들의 영업 전망이 밝지 않다는 점은 매각에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효성캐피탈의 무수익 여신(고정이하) 규모가 1071억원으로 5.34%에 달해 다른 캐피탈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도 우려하고 있다. 본입찰 전 실사 과정에서의 부실 자산에 대한 평가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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