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사는 사람들, 서울 내 집 마련도 어렵다"

입력 2020-06-17 15:41   수정 2020-06-17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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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출범 후 21번째 부동산 대책이 17일 발표됐다. 지난 2월 대책 이후 내리던 서울 및 수도권 집값이 다시 상승세로 돌아서면서 정책 효과가 떨어졌다는 지적이 나오자 정부가 신속하게 더 강력한 규제를 내놓은 것이다. 대책안에는 수도권 규제 지역 확대, 대출 규제 강화, 갭투자(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것) 방지 등의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번 대책으로 갭투자 등 투자 수요가 주는 효과는 있지만 서민의 '내 집 마련'은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갭투자를 한 후 내 집을 마련하는 수순으로 밟아가던 '사다리'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주택 대출 받기 어려워졌다

국토교통부?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는 17일 ‘주택시장 안정을 위한 관리 방안’을 내놨다. 2개월 이어오던 서울 집값 하락세가 멈추고 일부 비규제 지역의 중저가 아파트 값이 오르는 ‘풍선 효과’가 나타나자 다시 규제 카드를 꺼내들었다. ‘투기수요 근절, 실수요자 보호’를 위해 주택시장 과열 요인을 미리 차단하겠다는 의도다.

이에 정부는 각종 부동산 대출관련 규제를 받은 규제지역을 수도권 전역으로 확대했다. 수도권에서 조정대상지역으로 편입된 곳은 인천(강화·옹진 제외), 경기 고양, 군포, 안산, 안성, 부천, 시흥, 오산, 평택, 의정부, 남양주 등지다. 지방에서는 최근 집값이 급등한 대전과 청주가 조정대상지역에 이름을 올렸다.

투기과열지구 지정도 늘었다. 경기 수원, 성남 수정구, 안양, 안산 단원구, 구리, 군포, 의왕, 용인 수지·기흥, 화성 동탄2, 인천 연수구와 남동구, 서구, 대전 동구·중구·서구·유성구가 포함됐다. 정부의 이번 규제지역 확대로 조정대상지역은 69곳, 투기과열지구는 48곳으로 늘어났다.


규제 범위도 확대됐지만 주택 관련 대출을 받는 것은 더 까다로워졌다. 무주택자가 규제 지역(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에 집을 사고 담보대출을 받으려면 6개월 안에 해당 집으로 전입해야 한다. 현재는 9억원 초과 주택을 구입할 때만 1년(조정대상지역 2년) 안에 전입해야 했다. 1주택자는 규제 지역에서 신규 주택을 구입하면 6개월 안에 기존 주택을 처분하고 신규 주택으로 전입해야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이는 바로 들어가서 살 집이 아니면 사실상 신규대출을 해주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정책자금인 보금자리론에도 3개월 내 전입 및 1년 이상 실거주 유지 의무를 처음으로 부과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갭투자가 시장의 불안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관행상 이사갈 집 정해 놓고 매매에 나서는 6개월이 과도한 제한이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전세 대출도 막혀…"목돈 없는 서민들 내 집 마련 어쩌나"

전세 대출 기준도 강화됐다. 정부는 작년 12·16 대책을 통해 전세 대출을 받은 뒤 시가 9억원 초과 주택을 사거나 2주택 이상을 보유할 경우 전세 대출을 회수하도록 했다. 이번 부동산 대책에선 이 기준을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 내 시가 3억원 초과 아파트로 범위를 확대했다. 이 지역 내 3억원 초과 주택을 구매하면 전세대출보증이 제한돼 대출을 사실상 받기 힘들어진다. 전세대출을 받은 후 3억원 초과 주택을 구매하면 기존에 받았던 전세대출은 즉시 회수된다.

갭 투자를 막기 위한 조치에서다. 전세로 살고 있는 사람이 전세 자금 대출을 받아 시세 차익을 노리고 세입자가 있는 주택을 사들이는 행위를 금지하겠다는 것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최근엔 다주택자들은 물론 1주택자들이 전세 대출을 지렛대 삼아 갭 투자하는 경우가 늘었다"며 "전세 대출을 막아 갭 투자 수요를 막겠다는 취지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대출규제로 인해 서울과 수도권 내 무주택자들의 주거사다리를 약화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서울 관악구에 사는 신혼부부 김 모씨(35)는 “집을 사기 위한 대출도 막혔는데 갭 투자까지 못하게 하면 목돈이 없는 사람들은 내 집 마련을 어떻게 하느냐”며 “근로 소득으로 집을 사는 것은 이제 불가능해졌다”고 토로했다.

주택 매매를 고려하고 있던 회사원 박 모씨(37)도 “현금 없는 무주택자가 적은 돈으로 집 한 채 마련해보겠다고 나서는 행위까지 막으면 서민은 내 집 마련에 대한 꿈을 꾸지도 말라는 것”이라며 “이제 서민들은 전세살이 말고는 서울에서 살 수 없을 듯하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도 이번 대책에서 실수요자 보호 대책이 빠져 무주택자의 내 집 마련 창구가 막혔다고 지적한다. 한 부동산업계 전문가는 "집값은 오르는데 무조건 주택 매매를 하지말라고만 하면 무주택자 입장에서는 상대적 박탈감과 불안감만 커질 수 있다"며 "실수요자들의 내 집 마련을 차단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함영진 직방 데이터랩장은 "대책 강도는 여느 정책 못지않게 규제의 수위가 높은 편이다"라면서도 "부동산시장으로의 자금유입을 원천봉쇄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집값의 조정까지 기대하긴 제한적일 것"으로 판단했다.

전입 의무를 부과함한 것은 일부 갭투자자들을 투기를 차단 할 수는 있지만, 거주의 목적으로 매입하는 준실수요자들에게는 큰 영향이 없다는 분석도 있다. 양지영 양지영R&C소장은 "전입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투자수요를 차단하는데 큰 도움은 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오히려 전입 의무로 인해 전세 물량이 감소해 전세시장의 불안을 더 부추길 수 있다"고 말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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